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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시론 <'3불'과 관계없이 우리 교육은 위기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었던 노 대통령이 교육과 관련하여 3불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학 본고사와 고교 등급제, 그리고 기여입학제 금지라는 3불정책이 무너지면 우리 교육의 위기가 온다는 진단까지 하셨다. 대학별 본고사를 부활하면 모든 학생이 학원으로 몰려 주입식 암기교육에 매달리고, 결국 공교육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대학자율은 교수 연구의 자유라는 가치를 담은 것이지 입시정책의 자율은 아니라는 지침까지 내려 주셨다.
당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표현하시는 분다운 지적이다. 3불정책에 대한 공격으로 좌불안석이었던 교육부 공무원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방어막은 가뭄의 단비였을 것이다. 하지만, 평준화 정책이 불만이었던 사람들은 이것으로 대통령의 편 가르기와 좌파성향을 다시 확인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정말 자식 교육 제대로 시켜 보고 싶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대통령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대통령께서도 자식 교육을 고민하셨을 것이다. 또 열심히 시켰을 것이다. 노동운동과 정치투쟁으로 바쁘셨겠지만 학부모였을 것이니 이 나라 교육 상황도 웬만큼 아실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최소 10년 전의 일이거나 아니면 당신께서 너무나 바쁜 나머지 자식교육 문제는 건너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께서 확인하실 사실은 현재 우리 교육의 상황이다. ‘공교육 붕괴’ 또는 ‘사교육 열풍’은 3불정책이 살아있는 현재의 일이다. 대학 본고사가 없는 지금도 학생들은 학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아니 학원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친구 만나거나 잠자러 학교에 간다. 공교육 붕괴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학원은 이제 대도시만의 교육방식이 아니다. 시골 읍면 동네에서도 활성화되어 있다. 대통령께서는 3불정책이 붕괴되면 주입식 암기교육만이 남을 것이라고 하셨지만, 지금 우리 교육이 바로 주입식 암기교육밖에 없다. 3불정책이 엄연히 시행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정말 창의력 교육과 인성교육을 바란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꿈같은 소망이다.
대통령께서는 이제야 교육의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가족들은 더 좋은 교육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조기유학 열풍과 이와 연관된 기러기 아빠들의 이야기는 이미 수년 동안 우리 이웃의 이야기였다. 돈 많은 사람들의 난리가 아니다. 혹시 이런 상황을 ‘돈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 다 떠나면’, 돈 없고 힘없는 민중들만의 나라를 만드실 높은 생각으로 기대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국가도 국민의 기본 교육을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 국가의 존재 가치는 없다. 국제화된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외국에서 돌아오면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한가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신의 국민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식민국가나 후진국에서 나올 이야기이다. 우리 교육의 위기는 이미 왔을 뿐 아니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언젠가 온 나라가 도박장화되었을 때, 당신은 ‘개도 짖지 않더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제 교육에 관해서는 온 동네 개뿐 아니라 대한민국 학부모 모두가 울부짖고 있다. 우리 교육의 위기를 3불정책에 관한 논쟁으로 한가롭게 따질 때가 아니다. 정말 우리 교육이 위기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사수하든 철폐하든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에서 벗어나 정말 위기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교육의 위기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자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을 때 위기는 정말 다가온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잘 감쌀 수 있었던 교육부 관리와 대학 당국들의 능력에 대해 찬사를 보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