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양근만 교육팀장이 쓴 <학자적 소신과 ‘교육부총리’ 자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묘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일 EBS 특강을 통해 “3불정책을 폐지할 경우 초등학교까지 사교육 열풍을 불러와 공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입시를 통한 계층 이동의 통로를 봉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와 사립대총장협의회 등에서 제기한 3불정책 재검토 요구를 정면으로 일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3불정책을) 잘 방어해 나가지 못하면 진짜 교육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도 했다.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노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3불정책’(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사수에 팔을 걷어붙였다. 10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대국민 직접 홍보에 나선 것이다.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지역 시민단체 대표를 모아놓고 정책설명회를 갖고, 지역 대학총장과의 간담회도 갖는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충북교육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3불정책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대학의 이기주의”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 부총리는 4월 5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회의에서는 20여 분간이나 3불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3불정책은 어느 정부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3불정책 폐지 요구를 비판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과 현 정권의 교육관이 자율과 경쟁보다는 평등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부총리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교육학자로서, 서울대 교수로서 각종 저서나 기고 등을 통해 대학의 자율을 줄곧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한 저서에서 한국 교육의 근본 문제를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으로 인한 경직된 획일성’으로 규정했다. 그는 또 초·중등 교육에 관한 행정은 시·도교육청으로 대폭 이관하고, 고등교육에 관한 행정은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 위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었다.

    취임 전 김 부총리는 자신이 지금 홍보하려고 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수능 성적을 없애고 수능등급제를 도입한 데 대해 “본고사가 없는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대입 전형의 핵심 정보인 수능의 비중을 대폭 낮춘다는 것은 그것을 대신할 신뢰할 수 있는 전형자료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별·학과별 특성을 살려 신입생 선발 기준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도 했고, 획일적 교육 때문에 수월성(秀越性:우수 학생들을 키워내는 교육)도 평등성도 모두 죽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김 부총리의 과거 발언들에 비춰볼 때 그가 최근 대학들이 대학 입시 자율권을 달라고 한 데 대해 ‘이기주의’라고 면박을 준 것은 도저히 한 입에서 나온 얘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획일적 교육을 비판하더니 이제 평준화체제의 유일한 탈출구인 특목고를 ‘사교육의 주범’이라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김 부총리가 현 정권의 교육관과 반대 입장에 있는 정권에서 교육부총리로 임명됐다면 3불정책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지난해 입각한 김 부총리는 기껏해야 1년 남짓 교육부총리에 있게 된다. 이 짧은 기간의 교육부총리 자리가 40년 가까운 교수생활 동안 지켜온 학자적 소신을 바꿀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권력의 눈치보기에 익숙한 관료 출신보다 학자적 양심이 생명인 교수 출신이 더 심하게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