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에디터 칼럼'에 이 신문 손병수 경제부문 에디터가 쓴 '시기심과 이기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 대전 살아." 지난 5년간 어디 사는지를 묻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무수히 되풀이한 말이다. 그때마다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대치동에 전세 산다는 말을 줄여서 대전 산다고 그래." 잠시 의아해하던 상대는 으레 실소를 터뜨린다. 왜 웃을까.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와 학원가의 상징인 대치동과 '전세'라는 단어의 부조화 때문일 것이다.
그런 대치동이 지난 2주 동안 논란의 중심부에 섰다. 지난주 정부가 주택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종합부동산세로 대표되는 보유세 파문이 먼저 닥쳤다. 짐작은 했지만 크건 작건 방 세 개가 넘는 대치동 아파트는 거의 모두 종부세 대상으로 나타났다.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부자든, 1주택자든 공시가격이 같으면 똑같은 보유세를 물어야 한다. 보유세가 무서워 아파트를 팔려 해도 양도세 부담이 너무 커 오도 가도 못하는 현실 역시 함께 부각됐다.
언론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정부는 15일 경제정책 총수인 권오규 부총리를 내세워 대략 두 가지 논리로 응답했다. 하나는 "아파트 값이 오르면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해 보유세 부담이 훨씬 작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하나는 더욱 공격적이었다. "강남 집 팔아서 분당 가면 양도세 내고도 돈이 많이 남는다."
이번 주에는 사교육비 부담의 주범을 외국어고를 비롯한 특목고로 지적한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발언이 대치동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사교육비나 특목고 열풍이 상당 부분 대치동과 관련돼 있으며, 대치동 아이들의 특목고 진학률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높은 것은 사실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따라서 사교육비 급증 책임의 일단이 대치동에 있다는 지적으로 들릴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대전' 살고, 두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대치동이 관련된 이런 공방을 지켜보는 심정은 이래 저래 불편했다. 종부세 문제의 경우 대치동의 세입자들이거나 집값이 싼 다른 지역 주민들 간에는 "거, 고소하다"는 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에도 비슷한 댓글들이 넘쳐 흘렀다. 그래서 경제부총리가 더욱 공격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목고 책임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지 못하거나 사교육비 부담을 감당키 어려운 대부분의 부모가 공감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반응들의 밑바닥에 시기심(猜忌心)이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시기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대치동이나 특목고를 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역과 계층으로 나뉘어 서로 공격하는 갈등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어느 집단이나 권력이 이런 심리를 조장한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두 명의 부총리가 1주일 간격으로 나섰던 종부세와 특목고 공방에는 다분히 그런 측면이 있다. 경제부총리는 "강남 집 팔아 분당 가라" 하고, 교육부총리는 "특목고가 사교육 유발의 진원지"라고 한다. 이들의 말은 얼핏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둘 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특정 지역 주민이나 학부모에게 떠넘겨 결과적으로 갈등구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시기심보다 이기심(利己心)일 것이다. 사전은 이기심을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으로 정의한다. 경제주체들이 이기심에 따라 경쟁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시장기구가 작동해 부와 번영을 이룬다는 것이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 아니던가. 탐욕으로 흐르는 것만 경계한다면 시기심 대신 이기심을 존중하는 사회나 경제가 훨씬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나 같은 사람도 좀 더 당당하게 주소를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나 대전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