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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좌파 역사학자 강만길씨가 “한국현대사를 쓸 때 얼마만큼 과거를 청산했느냐가 (정권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7일 대통령 초청으로 정부 각 부처의 과거사 정리 관련 위원장들이 가진 점심 자리에서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씨는 “이승만정부와 군사정부는 물론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도 군부세력과 연합해 세웠기 때문에 과거 청산이 불가능했고 참여정부에 와서 비로소 가능하게 됐다”며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역사적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강씨는 수천만 명의 중국 국민이 참변을 당한 중국의 문화혁명을 칭송해 온 다른 학자와 함께 이 정권의 정신적 사부(師父)로 통해왔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인사들은 그에게 깍듯한 존경을 바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이 정권의 유명한 말은 그가 쓴 ‘한국근·현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씨 주장은 대한민국이 그만큼 부끄러운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역사학자의 기본 자질은 넓고 균형 잡힌 시각이다. 더구나 한국근현대사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경우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강씨는 민중사관밖에 모르는 외눈박이다. 그가 쓴 책의 독립운동 부분은 공산당운동과 좌파 노동운동 등 좌파 일색으로 그려져 있다. 강씨에 의하면 6·25는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다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에겐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 침략했다는 사실은 별게 아닌 것이다. 그의 책 어디에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룬 한국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자주 드나들고 2004년에는 자기의 개인 책 8000권을 북한 조선사회과학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북한 주민이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모시면서 살아야 했던 지옥 같은 60년 세월이 비칠 리가 없다.
강만길씨의 이번 발언은 우리 대학의 역사 교육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경제성장과 자유 확대, 국제협력 같은 근대국가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강씨 같은 역사학자를 길러냈고, 그런 사람이 교단에서 젊은이들에게 강씨 식의 대한민국 역사를 가르치도록 해 왔기 때문이다. 시퍼렇게 녹이 내린 좌파 이념과 폐쇄적 민족주의에 아직도 갇혀 있는 강씨 같은 사람들에게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계사의 발전 과정에 눈뜰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