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달 26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재외공관장들을 상대로 ‘참여정부 4년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서 이 실장은 자신이 직접 원고를 썼다면서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였음을 강조했지만 공관장들의 반응은 내내 차가웠다고 한다.

    “일부 공관장은 이 실장이 강연하는 연단이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으며 강연이 끝난 뒤 박수도 치지 않았다”고 한 신문은 보도했다. 심지어 “한쪽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는 중견 외교관의 말까지 인용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중 강연’부터 생소하게 들리지만 어쨌든 현 정부의 대통령이나 그 주변 인물들만큼 공무원이나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의식이 강한 정권은 드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강연하는 모습이 매스컴에 보도되고는 했다.

    요즘엔 그런 장면이 뜸해졌지만, ‘어린 백성’을 가르쳐주겠다는 의식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분야다. 특히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 나온 것은 지난 1월25일 노 대통령의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 때였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대책을 설명하던 대통령은 갑자기 실수요자들을 향해 “다음에 사야 되는데 왜 앞질러 사가지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소비자들의 주택 구입에까지 일일이 간섭하는지는 일단 덮어놓더라도, 정부의 정책 실패가 아니라 바로 주택 수요자들, 그러니까 일반 국민의 상황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통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인터넷 매체의 합동 인터뷰 자리에서도 같은 성격의 발언이 반복됐다. 거래세 성격의 양도세 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집을 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비싼 동네서 싼 동네로 이사 가면 양도세 10% 내고도 많이 남는다”고 대통령은 맞받아쳤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런 정도까지 사적 영역에 개입해도 좋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한 노조 지도자가 “앞으로 가급적 말을 아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자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가려서 해달라”며 화를 낸 적이 있다. 정말이지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구분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