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배명복 논설위원이 쓴 '한국의 리콴유를 찾아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제비는 작아도 오장육부를 다 갖고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가 자주 인용하는 중국 속담이다. 싱가포르의 성공 스토리를 손바닥만 한 도시국가의 깜찍한 변신 정도로 폄훼(貶毁)하는 시각에 대한 그 나름의 반론이다. 나라가 크든 작든 국가경영의 기본 원리는 똑같다는 얘기다.

    자치정부 초대 총리로 그가 집권한 1959년 당시 싱가포르는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부존자원이라곤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인종 갈등과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하던 때였다. 폭동과 파업이 끊이지 않고 폭력이 줄을 이었다. 대국(大國)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약점은 더 큰 부담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그는 싱가포르를 30여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의 빈곤국에서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자서전에서 그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여유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다른 나라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었다. 싱가포르가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다른 나라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작든 크든 다른 나라의 경험과 사례를 최대한 참고했다. 이에 대해 리 전 총리는 "나는 우리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했다"며 "타산지석의 기회를 제공한 외국의 유능한 지도자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미니스터 멘터'(Minister Mentor)란 독특한 직함을 갖고 뒤로 물러나 있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은 여전하다. 지난주 그가 10~20년 후 싱가포르의 비전을 제시한 것도 그 소임의 일환이었다.

    신년 하례 만찬 연설을 통해 그가 밝힌 싱가포르의 청사진은 '제1세계의 상층부(upper half of the First World)' 진입이다. 싱가포르는 비록 선진국이지만 아직은 제1세계의 하층부(lower half)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따라서 늦어도 20년 내에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퍼스트 클래스로의 업그레이드다. 이를 위해 녹지와 수로가 어우러진 열대 환경을 바탕으로 런던.파리.뉴욕이 한곳에 공존하는 세계 최고의 주거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하루 24시간 활력이 넘치는 매력적인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급 인재와 투자를 끌어들여 지속적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전략이다.

    어째서 우리에겐 리콴유 같은 지도자가 없느냐는 한탄이 나온다. 하지만 그를 수입해 국가경영을 맡긴다고 그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가 보여준 것은 창조의 리더십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로서 그는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와 혁신의 리더십이다. 이미 있는 그림을 뜯어고치고 새로 그려야 한다.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마하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 실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력만큼은 부럽기 짝이 없다. 그는 소속을 떠나 능력과 청렴성을 기준으로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했다. 이들을 통해 관료집단을 장악해 공무원들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일류 집단으로 변모시켰다. 또 투명한 정책 결정과 집행을 통해 부정부패의 소지를 차단했고, 원칙이 정해지면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이 점에서 우리 지도자들은 그와 달랐다. 혁신의 구호만 요란했지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관료집단의 강고한 벽을 깨는 데 실패했다. 임기 말을 앞두고 막판 떨이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요란한 낙하산 인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지금 샌드위치 신세다. 실패한 지도자가 또 한번 나온다면 우리는 예속과 굴종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전과 정치력을 갖춘 유능한 리더를 찾아내는 책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