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비국가행위자 간첩 처벌 공백 여전국가기밀 범위 미확정 … 판례 따라 줄고 늘고기밀을 게시판에 올린 순간 기밀 아니란 판정외국 간첩 형량, 미국·일본의 절반도 안 돼대공수사 2년 3개월 실적 '0' … 역량도 붕괴간첩 잡으라 만든 조직, 특검에 70%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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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서성진 기자
형법 제정 73년 만에 간첩죄 조항이 손질됐다. 간첩 행위 처벌 대상을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히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이 지난달 26일 의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정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핵심 안보 공백을 방치한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국가정보원·경찰청 출신 대공 전문가들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국가정보연구회 창립 5주년 컨퍼런스에서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간첩죄 조항이 바뀐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비국가 행위자의 단독 간첩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치안정책연구소에서 25년 동안 안보대책연구관으로 근무한 대공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서성진 기자
◆"지령 없이 혼자 기밀 빼내도 처벌 못 해"이번 개정의 핵심은 형법 제98조에 2항을 신설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사주·의사연락 하에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방조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중국·러시아 등 제3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그러나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치안정책연구소에서 25년 동안 안보대책연구관으로 근무한 대공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현행 개정안의 한계를 "구석기 시대 무기로 빅데이터·AI 시대를 대비하는 격"이라고 규정했다.유 원장은 "적국이든 외국이든 우방국이든 외부 지령 없이 개인이 스스로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는 이번 개정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이른바 '비국가 행위자'의 자발적 간첩 행위가 여전히 법망 밖에 있다는 취지다. 유 원장은 "미국 연방형법은 국가기밀을 소지하고 있기만 해도 처벌하며 넘길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기다리지 않는다"며 국내법의 구조적 허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온라인 해킹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간첩 행위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 원장은 "사이버 공간에서 해커가 국가 기밀을 탈취하는 행위는 이번 형법 개정 범위 밖"이라며 "AI·빅데이터 시대의 간첩 행위를 1953년식 조문 틀로 규율하려는 것 자체가 한계"라고 꼬집었다.◆대법원 판례에 갇힌 '국가기밀'… 유죄 인정 30% 불과국가 기밀의 개념과 범위가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혔다. 유 원장에 따르면 현행 수사 체계는 1997년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비공지성'(공개되지 않은 정보)과 '실질비성'(국가 안보에 실질적 위협) 요건에 묶여 있다.유 원장은 "이 두 기준이 악용된 대표 사례가 사진작가 이시우가 군사 기밀을 촬영한 뒤 공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림으로써 '비공지성' 요건을 스스로 무너뜨려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라며 "기밀을 공개 게시판에 올려버리면 그 순간 기밀이 아니게 된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실제 왕재산·일심회 사건 등 대형 간첩 사건에서 국정원이 기소한 기밀 혐의 중 유죄로 인정된 것은 30% 안팎에 그쳤다. 그는 "일본의 특정비밀보호법처럼 별도 입법을 통해서라도 기밀의 종류와 범위를 특정하는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제언했다.형량의 불균형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정된 외국 간첩죄(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는 일본(10년 이상)이나 미국(무기 또는 10년 이상)에 비해 현저히 낮다. 유 원장은 "우방국이든 적국이든 국가기밀을 빼돌리는 행위의 해악은 동일한데 상대국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을 지낸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서성진 기자
법리적 공백과 함께 간첩 개념 자체가 한국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을 지낸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은 에임스 사건을 비교 사례로 들며 한국과 미국의 간첩 유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진단했다.장 사무총장은 "미국에서는 CIA 요원이 기밀을 통째로 넘기는 에임스형 간첩이 주류라면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 일어난 간첩 사건의 대다수는 기밀 탈취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에 침투해 대한민국 체제를 변형시키는 영향력 공작"이라고 말했다.이어 "에임스형 간첩은 피해가 눈에 보이기에 징역 20년, 종신형이 나오지만 영향력 공작형 간첩은 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굵직한 간첩 사건들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장 사무총장은 "현행 간첩법 체계는 기밀 누설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영향력 공작형 간첩을 포착하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서 "온라인 여론 조작, 허위 정보 유포, 싱크탱크·언론·시민단체를 통한 정책 개입 등은 합법적 외형을 띠는 경우가 많아 현행 간첩법으로는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이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간첩 법제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대안으로 중국의 반간첩법처럼 '국가 이익 침해'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하거나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처럼 등록과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정원 정책정보 담당관을 지낸 정주진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서성진 기자
◆"간첩법 개정, 간첩 잡을 수사 역량 없으면 조문으로만 남아"법 개정과 맞물려 수사기관 재편이라는 또 다른 변수도 등장했다. 국정원 정책정보담당관을 지낸 정주진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는 "간첩법 개정과 중수청 신설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간첩 수사 조정권이 사실상 중수청으로 넘어갔다"면서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가장 획기적인 변화"라고 진단했다.그는 "중수청법 43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이 간첩 사건을 인지하면 중수청에 통보하고 중수청장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도록 강제 조항을 뒀다"면서 "간첩 관련 정보는 국정원, 수사는 중수청·경찰·방첩사로 분산되는 구조가 되면서 업무 중복과 역량 누수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 ⓒ서성진 기자
전문가들은 법 개정보다 시급한 과제로 '수사 체계의 정상화'를 꼽았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축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 역량이 기형적으로 퇴화했다"며 "대공수사권(간첩수사권) 박탈과 국내정보 기능 폐지로 국정원은 국내 안보 위험을 모니터하는 기능이 빠진 외눈박이 기관이 됐다"고 성토했다.특히 경찰의 대공수사에 대해 "숨기려는 자와 찾는 자의 게임은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인데 이를 경찰이 치안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유 원장도 "2024년 1월 1일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된 이후 현재까지 2년 3개월간 간첩 검거 실적이 공식적으로 전무하다"고 비판했다.그는 "경찰청 국가안보수사단 인력의 70%가 현재 내란 수사 특검에 파견돼 있고 실제 대공수사 경험자는 10%도 안 된다. 심장 수술방에 일반 외과 의사를 투입하는 것과 같다"며 대안으로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 또는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수사청' 신설을 제시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파키스탄 대사를 지낸 신언 국가정보연구회 회장. ⓒ서성진 기자
파키스탄 대사를 지낸 신언 국가정보연구회 회장은 "인구 5000만 명에 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가 손에 꼽힐 정도다. 그만큼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많고 뺏으려는 자도 많다는 뜻"이라고 전제하며 법 개정 이후 국정원·경찰·중수청 간 조정·통제 문제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부처 이기주의가 여기서는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방첩과 사이버를 다루는 부서 간에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긴밀히 손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국정원이 나서서 조정 통제하겠다고 하면 볼멘소리가 나올 것"이라면서 "전 정부적 지혜를 모아 조정 통제할 수 있는 대표 기관을 이제는 생각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은 북한"이라는 국정원의 대북 인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확고한 정보 철학을 갖고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정원 출신인 임성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성진 기자
◆"98조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국정원 출신인 임성재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은 간첩법 개정이 국정원의 방향 재정립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평가하면서도 조직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임 연구원은 "국내 보안정보 기능과 대공수사권 폐지로 방향성을 잃은 국정원이 이번 개정을 계기로 반도체·방산 등 국가핵심 산업 영역으로 방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다만 "단순한 법 개정이 역할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국정원 대공수사권 원복 요구는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했다.그는 "과거로의 회귀보다는 정보·공작 활동과 보안·방첩·대테러 법집행 활동을 분리하는 조직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의 CIA와 FBI처럼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한국형 K-FBI 창설을 검토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외교부 및 국정원 출신인 최성규 고려대 국제법 연구교수. ⓒ서성진 기자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간첩법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최성규 고려대 국제법 연구교수는 "경부고속도로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한남대교에서 출발했는데 다른 나라는 이미 기흥을 지나 동탄까지 갔다"면서 "외국과 비교하면 이번 개정으로 공백이 메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했다.영국은 2023년 1911년 공식비밀법을 폐지하고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을 새로 제정했다. 핵심은 '적국'과 '기밀' 중심의 전통적 간첩 구성 요건을 없애고 국가 안보와 국익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넓힌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러시아 군 정보기관(GRU)의 사주를 받아 런던에서 방화를 저지른 22세 청년에게 방화죄가 아닌 국가안보법을 적용해 23년형이 선고됐다.최 교수는 "형법 98조 2항 개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면서 "간첩죄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지 말고, AI·사이버·데이터 환경에 맞는 정보안보법 체계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아울러 "법 개정과 함께 국민 신뢰 확보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면서 "일본이 스파이 방지법 추진 과정에서 국민 설득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처럼 우리도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 공감 없이는 어떤 법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
- ▲ 국가정보연구회(회장 신언)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창립 5주년 기념식 및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서성진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정보요원들을 기리는 기념 배지인 '이름 없는 별'이 주요 인사들에게 전달됐다. 배지는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이 직접 도안하고 자비로 제작한 이 배지는 깊은 검정 바탕에 황금 테두리를 두른 별 형태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지탱해 온 이들의 희생과 책임을 담았다.신언 회장과 이기덕 전 국가정보학회 회장이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김광탁 내외뉴스통신 회장,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주성 대한민국구국혼선양회 공동대표(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김창도 21세기전략연구원 대표이사, 김희곤 전 한국정책학회 전략부회장, 박준호 열린기술 대표, 성종환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손광주 북한인권단체 상임대표(전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 진창수 전 오사카 총영사, 최욱환 최덕근을그리워하는사람들 고문, 최형석 미국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컨설턴트, 한호현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등 17명에게 배지를 전달했다.국가정보연구회는 2020년 12월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폐지를 골자로 한 국정원법 전부 개정을 계기로 전직 정보요원과 연구자들이 뜻을 모아 2021년 3월 한국행정학회 분과위원회로 출범했다. 이후 연평균 10회 안팎의 세미나와 월간 연구지 발간, 외부 연구기관 협업을 이어오며 이날 창립 5주년을 맞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