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란에 이 신문 이훈범 논설위원이 쓴 '충암고 선생님들에 박수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설날 아침, 까치가 들이울더니 정초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 충암고등학교 얘기다. 올해 여기 입학할 새내기들은 복이 많은 게 분명하다. 자기가 선택한 담임선생님과 함께 고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2년차 젊은 교장 선생님이 용기를 발휘한 덕이다. 국내 처음으로 담임교사 선택제를 도입한 김창록(48) 교장이다. 두어 달 전 "학부모에게 교사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던 터라 같은 생각을 가진 선생님을 만나게 돼 여간 흐뭇한 게 아니었다.

    '파격적 실험'이라고 하지만 사실 당연한 것이다. 예비 담임교사들이 학급 운영방침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학생과 학부모가 살펴보고 원하는 교사의 학급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교육 수요자가 원하는 교사를 선택하는 게 뭐 그리 파격일까. 당연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그동안 우리가 그저 차려주는 대로 먹는 데 길들여 진 탓이다. 반찬 투정은 불경스러운 짓이다. 손님 알기를 쟁반에 붙은 밥풀 정도로 아는 식당에만 가다 보니 담배를 눌러 끄기 무섭게 재떨이를 바꿔주는 고급 레스토랑의 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한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밥풀떼기 식당에 가서 자꾸 재떨이를 바꿔 달라고 하면 식당 아줌마 속이 편할 리 없다. 충암고 선생님들 역시 처음엔 그랬을 터다. 평가만 해봤지 평가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교사들의 이유 있는 불안감을 털어내고 손님들이 바라는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이 곧 김 교장의 결단이고 용기였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고르듯 학생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인성교육을 해친다"는 비난이 있는 모양인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인터넷은 교육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주는 가장 손쉬운 도구일 뿐이다. 대통령도 인터넷으로 뽑을 날이 머지않은 마당에 인터넷에서 선생님 사진을 보는 것이 어째서 인성교육에 해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학교의 학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지만 기우(杞憂)요, 변명일 뿐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전인교육을 포기하고 입시기계로 전락할까 걱정하는 모양인데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게다가 입시는 학원에 맡기고 뒷짐 진 채 헛기침만 하고 있는 게 전인교육은 아니다. 일전에 교원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 학교 교사들의 열정에 탄복했다는 독자가 있었다. 문제집도 교사들이 손수 만든다는데 학원에서도 그 학교 학생들에게는 두 손 들었다고 하더란다. 그런 열성 교사들을 입시기계라 부른다면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우려보다는 교사들 간의 건강한 경쟁이 교육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클 게 분명하다. 그동안 공교육이 사교육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던 현실도 결국 경쟁 부재에서 비롯된 허약체질 탓이다. 어디서든 경쟁이 없으면 정체와 퇴보가 빈자리를 채우게 마련이다. 구한말의 개화운동가 유길준은 그것을 개탄했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처럼 장구한 역사와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가 영국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은 인도가 선후우열(先後優劣)의 경쟁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때문으로 봤다. 그래서 "각자 자기 직분에 힘쓰며 자기가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바에 따라 뜻한 것을 달성하고자 앞을 다퉈야 한다"는 경쟁론을 펼친다('서유견문').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선생님들이 그래 주길 바랐다. 이번 소식이 전해진 뒤 충암고에 격려 전화가 쇄도한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충암고 선생님들은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 아닌가. 물론 과거에 비해 몸이 고단할 수 있다. 스트레스도 더할 터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고품질 교육을 이끌어 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자명하다. 그 선봉에 선 김 교장과 충암고 선생님들의 분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