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남ㆍ북 지도층의 죄(罪)와 벌(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이 가라앉는다. 반쯤 물에 잠긴 기관실 엔진도 꺼져가고 있다. 몇몇 선원들은 다이빙하듯 겨울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뱃전은 아수라장이다. 이 방 저 방 구명복을 뒤지느라 법석이다. 후미진 그늘 속엔 또 다른 눈초리도 숨어 있다. 다들 뛰어내리면 배 안 귀금속은 모두 우리 차지라며 성급히 주판알을 굴리는 무리들이다. 먼저 뛰어내린 친구들은 첨벙거리며 뱃전을 향해 ‘어서 뛰어내려’라고 고함을 쳐댄다. 승객 목숨을 챙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 먼저 살겠다고 배를 버리는 선원들이나 이를 말리는 손길이나 승객은 안중에 없다. 이런 배를 골라 탔다는 게 운수가 사나웠던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기세 좋게 물을 가르며 첫 항해에 나섰던 게 2003년 11월 11일이다. 2004년 4월 총선에선 원내 반수를 넘는 152명을 여의도에 상륙시켰다. ‘30년 집권’ ‘100년 정당’이란 말도 아마 그때 나왔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며칠 전 국민 지지율은 12.3%다. 한나라당 지지율 48.3%의 4분의 1 수준이다. 지금이라면 이 배의 선원 적정 숫자는 40명 안팎이다. 그 배에 140명 선원이 올라타고 있으니 배가 가라앉는 것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

    50년대 헝가리 공산당의 수법을 흉내 낸다면 혹시 모르겠다. 1956년 헝가리 시민봉기가 소련에 무력 진압당한 후 들어섰던 허깨비 정권의 국민 지지는 바닥이었다. 그래서 당원 숫자 증가를 위한 궁여지책을 짜냈다. ‘첫째 새 당원 1명을 입당시키거나 탈당한 사람을 다시 끌어들인 당원은 1년 동안 모든 당 활동을 면제한다. 둘째 새 당원 5명을 유인해 온 당원에게는 탈당을 허용한다. 셋째 새 당원 10명을 확보해 온 당원에게는 과거에 이 당의 당원이 아니었다는 증명서를 발급한다.’ 공산당의 폭압에 시달렸던 헝가리 국민들이 만들어낸 우스갯소리다.

    그러나 이 방법도 지금 열린우리당에겐 약이 못 된다. 승객 목숨은 내팽개치고 저만 살겠다고 줄행랑치는 선원들이 모는 배를 탈 사람은 없다. 열린우리당 지지율 12.3%라면 4800만 국민 가운데 아직 이 배 선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승객이 어림해도 500만명은 될 것이다. 이 많은 승객들은 영문 모른 채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판이다. 이건 선원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 윤리의 문제다. 과거엔 이런 선원들에 대해선 해운업에서 영구(永久) 추방하는 처분을 내렸다.

    어제 아침엔 ‘북조선호’ 선장 일족(一族)의 소식이 국민 자존심을 긁을 데까지 긁어댔다. 북조선호 선장 장남의 마카오 생활 이야기다. 마카오 고급 주택촌에 호화빌라 두 채를 마련해 놓고 명품 쇼핑과 룸살롱의 밤 생활로 후계 경쟁에서 밀려난 한을 달래고 있다는 것이다. 선장 아들은 2001년에도 도쿄 디즈니랜드를 구경한다고 위조여권으로 밀입국하려다 검거됐다. 이때도 선장 아들과 동반 여성이 몸에 입고 감고 차고 걸고 낀 호화 명품의 긴 리스트가 화제였다. 선장 아들의 요즘 하루 씀씀이를 감당하려면 북한 일반 노동자 월급 수백 개월분도 모자란다는 계산이다. 2400만 승객들이 허기져 입에 넣을 것을 찾느라 드넓은 만주벌판을 헤매고 있는 시간에 선장 일족의 생활이 이렇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50년대가 이랬다고 한다. 한 할머니가 이마를 갈라놓는 듯한 추위 속에 꼬박 10시간 줄을 서 간신히 강냉이 한 줌을 배급받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절로 새어나왔다. 지나가다 이 소리를 들은 행인이 가만히 주의를 주었다. “ ‘지도자 동지,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해요.” “그럼 언제 하느님께 감사드리나요”라고 할머니가 되묻자 “하느님이 지도자 동지를 데리고 가시면 그때 하세요”라면서 쏜살같이 모습을 감췄다는 이야기다.

    2007년 겨울의 평양은 1950년대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배고프다. 평양에서 지옥으로 거는 전화는 거저고,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서울 시민에게 거는 통화는 비싸다는 농담이 나올 만도 하다. 평양과 지옥은 한 동네 한 지붕 아래라서, 열린우리당 당사와 국민 사이는 산 넘고 물 건너는 장거리 통화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남의 국민이건 북의 인민이건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도야 다르다 해도 남·북 지도층이 자신들의 죄(罪)와 벌(罰)의 무서움을 모르는 게 어쩌면 이렇게 닮아가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