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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자 사설 <과거사위의 ‘인민재판’에 끌려나온 판사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가 30일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 1412건의 담당 판사 492명의 이름을 곧 공개하기로 했다. 긴급조치사건별로 판결 요지와 판사 이름을 함께 기록한 분석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대법관·헌재 재판관 등 현직 고위법관 10여명과 전직 대법원장·헌재소장·대법관 등 전직 고위 법관 100여명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판사 명단 중 일부는 이미 30일 정권과 가까운 어느 언론에 공개됐다. 과거사위의 누군가가 일부러 흘린 것이다.
긴급조치는 유신정권이 국민을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고 평상시에 민간인에게 비상군법회의 재판을 받도록 했던 비민주·반인권제도였다. 따라서 당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과거사위가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판사 명단 공개는 차원이 다르다. 명단이 정식으로 공개되면 정권의 ‘과거사 캐기 바람’에 올라탄 세력들은 해당 판사들을 ‘독재정권에 순응한 반민주 판사’로 몰아붙일 게 뻔하다. 정권과 코드를 맞춘 사람들은 벌써부터 끈질기게 사법부의 인적 청산을 요구해 왔다. 긴급조치사건을 맡았던 판사들은 대부분 하필 그때 그 직책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판결문에 이름을 남기게 됐을 것이다. 과거사위의 이번 결정은 판사들더러 법전을 보지 말고 나중에 욕먹지 않을 판결만 궁리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과거사위 생각대로 관련자 명단 공개가 긴급조치문제를 정리하는 길이라면 공개 대상은 긴급조치 위반사범을 잡아들였던 정보기관과 검찰·경찰, 긴급조치 발동 논의에 참여했을 청와대 참모와 국무위원들까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결국엔 유신헌법 국민투표에서 90% 넘게 찬성해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을 줬던 국민의 책임까지 물어야 될 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