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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이명박 vs 박근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아지자 세상 사람들의 눈길은 자연히 누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설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낀 환담 자리에서 곧잘 “이명박과 박근혜 중 어느 쪽이 될 것 같으냐”는 황당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신문사 논설위원실에서 근무한다 해서 무슨 특별한 정보가 있겠는가. 이럴 때마다 로또 당첨번호를 미리 아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며 핀잔을 늘어놓게 되지만 사실 필자라고 대통령 선거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관심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까를 궁금해한다면, 필자는 거꾸로 우리 국민이 어떤 정부를 원할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둘 중 누구를 택함으로써, 국정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려 하는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결국 같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 유력 후보인 박근혜 전 당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퍼스낼리티는 상당히 다르다. 박근혜가 ‘무위(無爲)’의 정치인이라면 이명박은 ‘유위(有爲)’의 정치인에 가깝다.
이명박은 국민 모두에게 뭔지 몰라도 가시적 업적을 이루리라는 확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서울시장 재임기간중 현 정권과 너무나 대조적인 공적을 쌓아올렸다. 청계천 복원이나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 등은 사실상 혁명적 변화였다. 국민 모두가 눈과 몸으로 확인하는 이명박 브랜드다. 그에게 맡기면 모두가 원하는 소기의 성과를 되돌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국민의 가슴에 자리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파괴를 일삼는 무능과, 구호만 난무하는 국정 표류는 국민으로 하여금 이명박 브랜드의 목표지향적 리더십과 가시적 성과를 더욱 갈구하도록 만든다. 노 정권이 판을 깨면 깰수록 노 대통령의 안티테제인 이명박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높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 정부 말기에 이명박의 지지율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데는 어쩌면 노 대통령의 기여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국민에게 가시적이고 물리적 실적을 보여주는 타입의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에 가깝다. 그가 주창하는 경제정책인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은 무위의 브랜드다. 무위라고 해서 행위가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미(機微)를 포착한다는 뜻에 가깝다. 박근혜가 영국의 대처리즘을 지향하는 것은 법과 원칙, 시장원리라는 국정운용의 핵심을 장악한 채 나머지 영역은 가능한 한 민간의 창발력에 맡긴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기미를 장악하는 모습은 일찍이 목격돼 왔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 수가 50명도 어려울 것이라던 2004년 총선에서 박근혜는 자신의 존재감 하나만으로 개헌 저지선인 120석을 확보한 정치인이다. 그뿐인가. “대전은요?”라는 한마디 말로 대전시장 선거 결과가 뒤집어지고,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한마디 말로 최대 권부인 청와대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대선 후보는 한나라당뿐이 아니다. 다만 이 두 사람만으로 비교의 대상을 좁혀볼 경우라도, 누가 차기 대통령에 선출되느냐에 따라서는 국정 운영 스타일에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쪽은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국가를 운영해갈 것이며, 다른 한쪽은 가능한 한 민간의 자발성을 뒷받침하려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발전 수준에 비춰보자면 박근혜의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정권에의 실망이 클수록 이명박으로의 회귀 본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 국민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한국 사회가 처한 심리구조를 확인해 볼 기회다.
물론 이런 실험이 최종 답안을 내기까지에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최대의 적은 서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두 사람 모두 1, 2위를 달리고 있는 데서 나오는 교만일 것이다. ‘절대로 우쭐대지 마라. 몽골 고원의 리더들이 내게 패망한 것은 교만 때문이었다.’(김종래 ‘칭기스칸의 리더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