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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북풍(北風)아, 불테면 불어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금년 대통령선거 전(前)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인가가 대선 못지않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회담 자체가 성사될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 좌파세력이 이 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북한의 김정일도 여러 요인과 득실을 따지면서 정상회담에 응해 줄 것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근자에 노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특사파견 문제 등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보도도 있었다. 이들 보도는 이 정권이 초강대국의 내정간섭 배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대가로 지불하는 등 비굴하리만큼 회담을 간청하고 있는 반면, 김정일측은 느긋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회담은 열릴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다만 남쪽이 무릎을 꿇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현 정권과 김대중 정권의 전직 통일부장관들과 안기부 고위관리가 제각기 정상회담을 위해 여러 루트로 북한을 종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특히 DJ 쪽 사람들이 더 열심히 뛰고 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노 정권은 정상회담으로 노리는 것이 많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권 말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남북화해와 평화무드를 대선에 크게 반영함으로써 좌파의 실기(失機)를 만회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크게 선전함으로써 선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우리 선거풍토가 이벤트에 약하고 돌연성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을 이용해 막판 표몰이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DJ측이 특히 남북정상회담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것이 DJ가 시동(始動)한 햇볕정책의 불씨를 되살려주고 자신의 ‘통일업적’을 업그레이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느긋해 보이지만 김정일측의 회담의 동기(動機)도 절실하다고 봐야 한다. 핵(核)실험 이후 더욱 코너에 몰리고 있는 김정일 세력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쪽의 ‘보급로’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제재에 덧붙여 세계 여러 나라의 식량지원마저 끊기거나 줄어드는 상황에서 남쪽의 지원마저 중단되거나 감소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금년 남쪽의 대선에서 우파정권이 들어설 경우 남쪽의 대북정책이 전면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그나마 이어오던 대북지원에 결정적 변화가 올 것이 자명하다면, 김정일은 우파정권을 막아야 할 절박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저들이 금년 북한 매체의 합동신년사에서 반(反)보수대연합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주하다시피 공박하고 나선 것이나, 조평통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남조선 내부문제만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송종환 명지대 교수가 한 칼럼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한 선거 직전의 테러를 경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좌파에서는 북한의 핵이 한국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미국 등을 겨냥한 것이라고들 주장하지만 미국을 향한 것이기에는 북핵이 너무 작고 초라하다. 미국이 목적이었다면 미국이 ‘당근’을 제안했을 때 그것을 물었어야 한다. 미국으로서도 핵확산을 경계하는 것이지 자국의 안보 때문에 북핵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두고 계속 뒤로 빠지는 것은 북핵의 용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핵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용처(用處)는 한국과 남쪽의 대선이다.
그런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가지고 이제까지 뭉그적거리는 것처럼 보인 것은 사실 남쪽이 좌파정권이 너무 인기도 없고 무기력해 보여 크게 실망하고 있는 데다, 응해준다 해도 시기를 고려한 때문이다. 또 ‘목마른 쪽이 샘을 팔 것’을 기다려 온 점도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임기가 끝나가는 인기 없는 노 정권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그 정권에 정상회담의 선물을 주는 것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새 정권’이 우파 쪽으로 가는 상황이 되자 이제는 남한의 좌파를 구원할 필요가 생겼다. 북은 이것을 위한 카드로서 정상회담과 북풍(北風)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정상회담과 이에 따른 북풍이 과연 그들 뜻대로 한국의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있다. 과거에는 그랬었다. 대통령 후보들이 앞을 다투어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통일’문제로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북풍을 유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북풍은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국민들도 그것이 허풍이고 또 실제로 그런 남북 간의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목을 매 혹(惑)할 단계는 지났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북풍아 불 테면 불어라. 우리는 끄떡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