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 있었던 낡고 흠집 많은 구 정치인들이 머리를 내밀고 자기를 과시하거나 현시(顯示)를 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은 번추(煩醜)한 정치인들이 지닌 구태의 습성이자 속성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5·16군사혁명의 주역 중에 한사람이었던 제 2인자였던 JP는 어느 날 갑자기 예상을 뒤엎고 정치적 숙적(宿敵)이었던 DJ와 야합(野合)하여 자유 민주주의 헌법가치를 외면하고, DJ 정부의 제 2인자인 책임총리로써 햇볕정책을 2년여나 함께 수행하며 친북반미의 길을 DJ와 함께 걸어 국민을 실망시켰던 인물이다.

    충청권의 맹주 노릇하면서 과거 정치적으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던 좌파 DJ와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밀실야합(密室野合)하고, 햇볕정책 창시자인 DJ와 함께 절묘한 정치기술로써 2인자 권력을 다시 손아귀에 집어넣은 사람이 바로 JP다.

    DJ의 지휘아래 책임총리로써 대한민국 역사를 좌파의 세계로 역회전(逆回轉)시킨 책임의 상당부분을 JP가 담당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은 실로 그를 아끼고 좋아했던 많은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고통과 좌절을 안겨놓고야 말았다. 이러한 JP의 정치적 역정은 가슴 아픈 현대사의 검은 그림자와도 같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어떻게 해서 5·16군사혁명을 주도했던 JP가, 그리고 그가 창설한 중앙정보부에서 DJ를 수사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안고서, DJ와 정치적 결합을 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범부(凡夫)로서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혁명공약 맨 앞 조항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이념적인 선명성을 내걸었던 5·16혁명의 JP가, 용공은 고사하고, 솔선수범하여 친북반미의 이념을 목표로 햇볕정책을 내걸었던 그러한 DJ와 어떻게 손을 붙잡고 2년 동안이나 DJ를 보좌할 수 있었는지 자못 호기심이 간다.

    이런 JP를 충청권의 표를 의식하여 조언(?)을 구하는 대세론의 주역 이명박의 모습을 보고 또 다른 야릇한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다.

    친북반미의 현대사를 창조해낸 주역 DJ와 조연 JP는 언필칭 햇볕정책의 입안자이자 동반자이기도 하다. DJ정권의 탄생을 가능케 한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JP의 절대적 공로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DJ의 위장적 햇볕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을 창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당시 충청 맹주로 군림했었고, 자민련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JP라는 사실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JP를 찾아서 조언을 구하고 있는 대세론의 이명박은 JP의 표가 그토록 필요했을까? 차기 대통령을 향한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 혹시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치적 영향력을 내보이는 JP와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이명박과의 상관관계는 이미 순수를 뛰어넘어 정치 기술자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바라건대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자들은 정치 원로를 찾더라도 좀 깨끗하고, 좀 애국적이며, 그래서 진실로 국민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 이력을 지닌 정치 원로들을 찾아 조언을 구했으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JP를 찾았다는 이명박을 언론에서 접해보고, ‘대통령이 되려면 JP같은 사람을 꼭 만나서 조언(?)을 구해야 되는 것인가’하고 자문(自問)해본다.

    대통령 되려는 분들은 무엇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평범한 경구(警句)에 귀를 기울이는 덕목을 지녔으면 한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