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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과 캐논, 그리고…

입력 2006-11-20 09:42 수정 2006-11-20 14:37

하루하루 참 쳇바퀴처럼 바쁘다. 가만히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자. 조용히 차 마시며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운 친구를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십분은 될까. 단풍이 지는지도, 첫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편지는커녕 목소리 들어 본지도 오래 됐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아오던 편지함을 열었다. 그동안 잊고 살아 먼지가 보얗게 내려 앉아 얼핏 봐선 재활용할 종이더미 모아놓은 것 같이 보인다. 오래된 편지함에서 눈에 띄는 빨간색 편지봉투를 집어드니, 납작하게 종이짝보다 얇아진 은행잎 하나가 쏙 미끄러져 나온다.

미끄러져 나오는 은행잎과 함께 파헬벨의 캐논이 귓가에 울려퍼지고 나는 어느새 교복을 입은 여고시절의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

피아노를 잘 쳤던 내 친구 혜영이는, 변덕이 심하고 나풀나풀 제멋대로였던 나와는 달리 중심이 있고 속정이 깊은 친구다. 

피아노를 치는 혜영이 옆에 앉아 캐논을 배웠다. 피아노라곤 초등학교때 바이엘 상하권을 뗀 수준인 나는, 건반위에서 미끄러지듯 웅장한 음을 만들어 내는 친구의 손가락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특히나 캐논은 왜 그리도 가슴을 요동치게 했는지,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어 틈날 때 마다 친구를 졸라 한마디 한마디 배워나갔었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단짝인 혜영이와 심하게 다투고는, 여름방학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 은행나무가 온 교정을 다 물들이도록, 반년이 넘게 말을 안했다. 늘 하나같던 둘이, 둘로 나뉘어져 마음 한구석이 쓰린데도 자존심에 말도 않고 그렇게 6개월을 훌 쩍 넘길 때쯤, 텅빈 음악실에서 혼자 캐논을 치고 있는 혜영이를 봤다. 목이 메고, 코끝이 뜨거워지면서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눈물에 둘이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후 혜영이가 노란 은행잎을 곱게 말려, 편지와 같이 건네줬다.

은행잎이 온 거리를 덮을 때, 캐논이 온 마음을 덮을 때 나는 나의 친구 혜영이가 너무 보고 싶다.

고운 은행잎과,
잔잔한 캐논과,
오랜 친구가 있어,
이 겨울의 문턱은 춥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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