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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13일 실시된 이 대학 교수의회의 차기 총장 후보자격 적부심사에서 부적격자로 분류돼 탈락했다. 참가 교수 9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가 부적격자라는 쪽에 투표했다. 국내 대학의 대표적 ‘CEO(최고경영자)型형 총장’으로 꼽히던 그가 거꾸로 후보 9명 중 3명뿐인 부적격자군에 들어간 것이다.
어 총장은 재임 4년간 고대의 내실을 다지고 대외 위상을 높이는 데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고대는 2005년 영국 ‘더 타임스’ 선정 ‘세계 200대 대학’에 국내 사립대 중 유일하게 184위로 진입했고 올해에는 150위로 뛰어올랐다. 작년엔 경영대 학부와 경영대학원이 동시에 세계경영대학협회(AACSB) 인증을 얻어 수준을 공인받았다. 대학운영의 제일 목표를 ‘국제화’에 두고 매년 재학생 1000명을 해외 자매결연 대학에 유학보냈다. 4년간 3500억원의 발전기금이 고대로 몰려들었다. 그의 이런 성과는 고대의 라이벌 대학을 바짝 긴장시켰다. 그리고 다들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어윤대의 고대를 벤치마킹하기 바빴다.
그런 그에게 교수들은 연임 반대 정도가 아니라 총장후보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내렸다. 적지 않은 교수들은 일반 교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라고 요구하는 그에게 부담과 거부감을 가졌다. 총장이 경영대학 등 특정 단과대학만 편애한다며 소외감과 불만을 토로하는 교수들도 상당했다. 대학을 지나치게 기업 논리로 운영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결국 그의 대학개혁이 교수들에게 고통스런 변화를 강요했다는 뜻이다.
대학을 개혁한다는 것은 곧 교수를 개혁하는 것이다. 대학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흘러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아니라 그 학생을 길러내는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어 총장식 개혁에 시달리던 교수들이 들고 일어난 데서 빚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들이 그렇듯, 총장 선출권을 쥐고 있는 교수 유권자를 총장이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어 총장은 고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에 분명히 성공했다. 짧은 기간에 부쩍 높아진 학교의 위상에 많은 학생과 학부모, 특히 동문들이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교수들의 표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의 개혁은 ‘성공한 실패’이기도 하고 ‘실패한 성공’이기도 하다. 새로 올 후임 총장 앞에는 중요한 선택이 놓여 있다. 어윤대 고대의 ‘성공’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실패’를 비켜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를 비켜가려 하면 ‘고대의 도약’을 단념해야 하고, ‘성공’을 이어가려면 ‘자신의 연임’을 단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