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마당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선전하고 다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햇볕정책을 포기하거나 수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어제는 전남대에서 강연까지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햇볕정책은 나름대로 한 유용한 방법일 수 있었겠지만 북한의 핵무기 실험으로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정책이 돼 버렸다. 그런데 다시 이를 고집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남한의 햇볕정책 때문에 핵 개발을 하겠다고 한 적 없다. 미국이 못살게 굴어서, 살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핵 개발을 한다고 그런다"고 했다. 남북 관계는 성공했는데 북.미 관계가 실패해 핵 문제가 악화됐다는 말도 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결국 미국 책임이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지난 8년간 정부가 북한에 갖다 준 돈만 4조5000억원에 이른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에 2400만 달러가 묶였다고 펄쩍 뛰고 있는 북한에 남쪽에서 지원한 자금이 어떤 기여를 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 보유를 악의적으로 무시하고 압박과 경제 제재를 계속하면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조장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북한의 핵 보유를 선의로 해석하는 것인지, 핵 무기 보유를 인정하자는 말인지 너무 혼란스럽다.

    대북 포용정책이 성공하려면 채찍과 당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채찍 없는 당근은 이미 실패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부해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도, 미사일을 발사해도, 심지어 핵무기 실험을 해도 당근만 준다면 북한이 왜 정책을 바꾸겠는가. "북한 핵실험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해도 구체적 행동이 따르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발언이야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적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