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이 시대의 미륵이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면서 도참에 능하다는 승려 도선(道詵)을 활용했다. 천문지리에 달통한 도선이 왕건의 탄생과 새 제국 건설을 예언했다고 백성들에게 퍼뜨린 것이다.

    또 다른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역시 도사라는 승려 무학(無學)을 동원했다. 이성계가 무너져가는 집에 들어가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온 꿈을 꾸었는데 무학이 “무너지는 집은 고려이고 등에 서까래 세 개를 진 형상은 임금 왕(王)자와 같으니 이성계가 새로운 왕국을 세울 꿈”으로 해몽했다고 전파한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왕조를 엎고 새 왕조를 세우는, 이른바 역성(易姓)혁명을 하면서 이처럼 도참설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로써 백성들에게 자신의 왕조 건설은 반역이 아니라 하늘의 뜻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또 때가 된 모양이다. 차기 대통령에 관한 각종 예언과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나온다. ‘예언가’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지난번 대선 당선자를 맞혔다느니, 김일성이 죽을 걸 예언했다느니 하며 신통력을 선전해댄다. 그러면서도 예언 대부분은 극히 모호한, 그러니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도록 한 뒤 나중 결과에 억지춘향으로 꿰맞출 수 있는 표현들로 돼 있다.

    어떤 것은 차기 대통령을 아주 구체적으로 점치기도 한다. 특정 예비주자를 가리키면서 400년 전의 정통한 예언서에 그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고 나와 있다고 하는가 하면, 그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할 ‘미륵’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서 이러는 걸까. 그래도 그렇지, 과거 백성들이 무지몽매하던 시절에도 혹세무민으로 다스렸던 도참설이 오늘날까지 횡행한다는 게 아무래도 우습다. 예언서라는 게 많은 경우 근거 없음은 물론이고 책의 존재 자체도 믿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나라의 몇 천 년 앞까지 내다봤다는 도선비기는 찾을 길이 없고, 민간 도참의 보감 역할을 했던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같은 책들은 실체 즉, 진본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특정 예비 주자가 대통령이 된다고 나와 있다는 위의 예언서만 해도 저자가 자기 죽을 날짜를 헛짚은 것은 물론이고 명당이라고 쓴 부모 묘가 잘못돼 열 차례 가까이 옮겼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또 도참사상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와 같은 천기를 누설하면 탈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신문과 책 등을 통하여 천기라는 걸 널리 공표하고 있으니 목숨을 걸기라도 했는지.

    사리가 이러함에도 그 같은 짓거리들을 하는 건 정치적 또는 상업적 목적이 있어서일 것이다. 특정인을 대통령 만들거나 돈을 벌기 위한 것과 같은. 예언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이를 널리 퍼뜨리거나 당사자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그러나 백성들이 덜 깨여 신화나 전설 참언 등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도 아니고 그러한 예언이라는 것들이 효과를 볼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본다고 오히려 역효과나 나지 않을까 싶다. 또 명색이 언론을 표방하고 있는 일부 신문 잡지들까지 상업주의와 옐로 저널리즘에 함몰돼 이와 관련한 광고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흥미로’라고 하면서 기사로 대서특필하는 일마저 눈에 많이 띄는 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까.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되 유력한 대선 예비주자 가운데 크리스천이 많은데도 그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참언의 대상에 오른 걸 신문 잡지 등에서 보지 못했다. 그런 황당한 소재가 되는 게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걸 알 만큼 지혜롭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그들이 그런 데에는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아가서 그러한 참언들이 널리 전파되지 않도록 크리스천들이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