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브로 가을이 물들여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산하의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뜨거운 햇살 속에서 파란 하늘로 시작된 가을의 발걸음이 더디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런 가을은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살금살금 다가서고 있었다. 코스모스 꽃에서 시작되더니, 온통 세상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가을 물이 배어들고 있는 모악산.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고정관념에 젖어든다. 그렇지 않다고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틀에 맞추어져 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는 짓이다. 모악산 하면 금산사만을 떠올린다. 물론 천사백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모악산을 대표할 만은 하다. 그렇지만 모악산은 금산사가 전부는 아니다.

    금산사로 들어가는 모퉁이를 돌아서면 증산교 본부가 있다. 저수지를 앞 냇가로 하고 있어 경관이 아주 뛰어나다. 은빛 호수를 바라보면서 들어서면 코스모스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에서 향이 은은하게 배어난다. 이미 가을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주변을 사정없이 물들여버리고 있다.

    교조를 모신 영대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삶의 길을 알려준 큰 도인이었으니, 그 길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 분에 대해서는 일천한 지식뿐이니, 구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심오한 지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나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갑자기 떠오르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몸이 나일까? 얼굴이 나일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몸은 이미 나가 아니다. 예전의 나는 분명 아니다. 무서울 것이 없었던 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활동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굴레가 되어 있을 뿐이다.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몸을 나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얼굴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언제 잃어버렸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있었다. 이 것이 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자랑하고 싶고, 우쭐거리던 나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디에서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잃어버린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바보가 분명하다.

    가을이 색칠을 하고 있는 모습은 곱기만 하다.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은 흔들림이 없다. 그들은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하여 머나먼 여행을 떠나야 할 모양이다. 분명 잃어버렸으니, 어디엔가 있을 것은 확실하다. 울긋불긋 저마다 독특한 색깔로 화장을 하면 찾기가 더욱 힘들 터이니, 서둘러야 하겠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나를 찾는 여행은 시작되었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