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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회평 논설위원이 쓴 시론 <‘전효숙 헌재소장’ 10대 오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전효숙 사태’에 대처해 온 방식은 서투른 레고블록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염두에 둔 모양을 맞추다가 중요한 자리에 블록을 잘못 끼웠고, 그것을 알면서도 내친 김에 억지로 끼워넣기를 거듭하다 끝내는 ‘괴물’을 만들고 만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상황이 이렇다면 쌓은 블록을 허물고 다시 판을 짜려할 텐데도, 빠진 블록 조각 하나를 들고 어떻게든 구겨넣을 궁리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주 전효숙 ‘헌법재판관’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보내놓고 “이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기꺼워하는 모습은 그래서 보기에 안쓰럽다. 그렇게 무마하기엔 이미 저지른 잘못이 막심하다. 전효숙 사태를 빚고 키운 실착과 오류는 대략만 짚어봐도 10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재소장을 지명하면서 재판관 사퇴 후 재임명이란 편법을 선택해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명문을 어긴 것이 그 첫째다. 청와대 비서관이 전화로 “사표를 써라”고 통보하는 무례, 그리고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절차를 현직 헌법재판관이 냉큼 수용한 안이함이 두, 세 번째 잘못이다. 여기에 사퇴에 따르는 후속절차까지 늑장을 부린 청와대의 코미디 같은 행정도 드러났다.
국회는 위헌이란 중대한 흠결을 놓친 채 청문회를 열어 판을 더 헝클어놓았다. 청문회 파행이 이어지자 청와대는 부랴부랴 ‘헌재 소장+재판관’으로 짜깁기한 임명동의안 보정서를 내놓았으니 다섯, 여섯 번째 오류다. 여당은 헌법과 법의 하자가 여전한 누더기 임명동의안을 8, 14, 19일 세 차례나 본회의에 상정하려한 일곱 번째 잘못을 이어갔다.
야당의 반발로 여의치 않자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두 번에 걸쳐 ‘대리 사과’라는 걸 했지만 이 또한 국무총리 몫인 대행서열을 어긴 명백한 월권이다. 뒤늦게 국회 법사위 재판관 인사청문회를 열어 땜질하겠다는 발상이 그 아홉 번째 실착이다.
여권이 저지른 가장 큰 열 번째 오류는 수 차례 시정 기회가 있었는데도 잘못된 길을 외곬으로 질주해 온 무모함이다. 그들은 재판관 청문회가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절차의 하자는 해소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미 돌아갈 ‘원점’은 없어졌다. 숱한 오류를 거듭하는 동안 법의 위엄도, 전효숙 후보의 이미지도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재판관 청문회로 ‘세탁’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관 청문회를 끝내 고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1일 요청안을 보냈으니 국회 법사위는 20일 이내에 청문 절차를 마쳐야 한다. 한나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어 당장 회의 진행 자체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강행한다 해도 ‘재탕’ 청문회에 서는 것만으로 청문 대상자는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그런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전번 소장 청문회 내용으로 갈음한다면 편법의 오류를 더하는 것이다.
한 달간 버티는 수가 있긴 하다. 재판관은 동의 절차가 필요없으니 인사청문회와 관계없이 한 달이 지나면 대통령이 바로 임명할 수 있다. 재판관 임명 후 소장으로 재차 임명하면 여권의 의도는 관철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효숙 헌재소장이 탄생된다면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더욱 치명적인 오류를 가져올 뿐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그럴 경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 절차의 적부(適否)를 놓고 당사자가 소장으로 있는 헌재가 심판하는 전무후무할 희극이자 비극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도 기막히지만 그 결론이 위헌이든, 합헌이든 헌재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은 불문가지다. 이 마지막 오류는 헌재의 존폐 문제까지 건드릴 수도 있다.
헌법 해석의 궁극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소의 수장을 임명하면서 헌법 절차를 거스른 게 전효숙 사태의 시작이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헌법재판소 인사에 줄곧 어른거려온 ‘권력의 그림자’는 사태를 악화시켰다.
‘헌법’과 ‘중립’ 그 두 키워드를 근원적으로 치유하지 않는 한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또 다른 오류만 추가할 뿐이다. 명분과 시간은 권력의 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