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대한민국이여, "똑바로 서 있지 못하갔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국회의원이 북한을 도와주는 일로 금강산에 갔다가 북한 군인들한테 큰 모욕을 당했다. 지난 17일 새천년생명운동본부의 북한 연탄아궁이 지원사업으로 금강산 인근 온정리에 갔던 한나라당 소속 차명진 의원이 북한 군인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가 2시간 동안 억류당하며 심문을 받고 마침내는 “뒷짐지고 서 있지 말고 똑바로 서지 못하겠느냐?”는 힐난까지 당한 것이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개인적으로도 창피한 일이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어느 국회의원’의 망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구겨진 나라망신 사건이다. 금강산 또는 개성공단 등지에서 우리 사람들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당한 굴욕적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사진을 찍었느니, 북한 사람들에게 정치얘기를 했느니, 살림살이에 관한 것을 물었느니 하는 이유로 선의의 한국인들은 단체로 억류당하는 등 큰 곤욕을 치르고 때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마치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당했고 또 지금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당국은 되도록 쉬쉬하며 사태를 오도하고 때로는 북한 편을 들어 우리 관광객이나 관계자들을 나무라는 데 급급하다. 이번 경우처럼 북한을 도와주러 또는 관광차 갔던 사람들이 북한측 인질로 잡히는 상황을 핑계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측의 부당한 요구나 정도가 지나친 희롱등에 당당히 항의하고 원칙을 관철하기는커녕 북한 당국의 처사에 굽실거리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그 많은 돈과 물자를 퍼주었으니까 우리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북한당국으로부터 대접 받으려고 퍼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북한에 지난 김대중정부 때부터 지금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총 6조원에 가까운 지원을 해왔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의도와 무슨 내역이건 간에 우리가 그만큼 우리 주머니를 털어 도와줬으면 대접은 받지 못할망정 최소한 따귀를 맞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는 데서 비롯한다. 북한에 대한 무분별한 ‘퍼주기’, 북한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저자세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정치적 선물을 챙기려는 남쪽 정치꾼들의 기회주의가 오늘날 북한 김정일 세력을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이런 오도된 자세와 정책은 더 나아가 김정일 세력으로 하여금 북한인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정을 가하게 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고립과 자폭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정권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존심을 내세운다.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 정권이 취하는 자세의 기본은 자존심이라고 한다. 작통권 문제도 자존심의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이 자존심이 유독 김정일 앞에서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췄다. 과거 정권 시절 북한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려는 무력적이고 선전적인 공세를 계속했었다. 그러나 그때도 북한은 한국의 안보태세를 두려워했으면 했지 한국을 우습게 보지는 않았다. 북한은 군부 등 강경한 정권은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그런 북한이 지난 10여년에 걸쳐 한국을 다루는 방식을 바꿔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무력적 위협으로 공갈하면서 (서해교전 사건) 다른 한편으로는 돈과 물자 뜯어가며 큰 소리로 남쪽의 기를 죽이는 방식이 훨씬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버릇을 키워준 결과가 오늘날 남쪽 국회의원에 대한 ‘무릎 꿇리기’로 나타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전시작통권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문제에 우리가 주도권을 못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이라고 했다. 그 말 자체는 맞다. 다만 그 주도권의 대상이 이 땅에 영토적 욕심이 없는 미국이 아니라 호시탐탐 한국을 타고 앉으려는 북한일 때 그 말은 정곡을 찌른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양도했거나 상실한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이며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북한군 장교는 차 의원에게 심문도중 “똑바로 서 있지 못하갔소?”라고 했다. 그 말은 바로 한국을 향해 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여, 똑바로 서 있지 못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