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난다. 집사람의 행동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신 것도 그렇고 새벽 1 시가 되어서 귀가한 것도 그렇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도 큰 소리를 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물론 아침에 술이 깨고 나서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지만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머리 속에는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로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가을을 감상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화가 다른 모든 것들을 먹어버렸다. 다른 생각은 아예 고개조차 내밀지 못한다. 코에서 통제하지 못해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색깔이 어찌나 선명한지 마음을 잡는다. 빨강이 원색 그대로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어, 치솟고 있는 불길 사이로 스며든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선다. 빨강의 코스모스 꽃뿐만 아니라 연분홍의 꽃까지 어울려 춤을 추게 되니, 분노의 감정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코스모스가 가을을 보이게 한다. 눈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던 파란 하늘도 시나브로 가슴으로 다가오고 있고, 온 몸을 휘감아 내리는 부드러운 가을바람도 감지할 수가 있다. 온통 가을로 넘쳐나고 있는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을의 마음은 넉넉하여 무엇이라도 모두 다 수용하고 있다. 분별없이 포용한다.

    코스모스 꽃에 취해버리니, 나를 지배하고 있던 분노의 감정은 그 힘을 잃어버린다.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의식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화를 냈었는지도 잊는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때에는 고통의 수렁 속에서 헤매고 있었었다. 그런데 가을의 품에 안기게 되니,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아내는 미리 말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 모임이니, 조금 늦는다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몇 십 년 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고 아름다운 유년 시절로 돌아갔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것이다. 정겨움에 젖어 있다보면 자연 술도 마실 수 있을 것이고 취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옹졸하게 화를 냈다니, 부끄러워진다.

    코스모스는 용서를 말하고 있다.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죽음을 떠올리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용서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하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아내의 행동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 ! 아름다운 가을이다.<春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