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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 총살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의 처형을 막아달라는 인권단체들의 진정을 각하(却下)했다. 이 주민은 탈북자인 동생에게 북한 소식을 전했다는 이유로 올 1월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 사실이 알려진 뒤 국내외에서 구명활동을 벌여왔는데 이를 인권위가 무시한 것이다.
이번 건은 북한 인권과 관련한 첫 진정인데, 그동안 좌고우면(左顧右眄)해온 인권위가 이제는 북한 인권 문제는 무시하기로 작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권위는 각하 결정의 근거로 국가인권위원회법(제4조)에서 법률의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한 점을 내세우지만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 법 1조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한다"고 설립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가 "대상이 북한 주민이고 가해자가 북한 정권이기 때문에 조사 영역에서 벗어난다"며 각하한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진정과 관련해 유엔고등판무관실과 유럽의회가 사형집행중지 요청 서신을 보내고 결의안을 채택했고 영국의 인권단체가 북한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는데도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국제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낸 나라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인권위는 북한 인권에 대해 직접적인 권고는 포기하되 우리 정부에 간접 권고할지를 정하겠다고 해놓고 이마저 감감무소식이다. 이럴 바엔 북한인권연구팀을 해체하고 연구비(연간 1억5000만원)도 반납하는 게 맞다.
인권위는 그동안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 인권위의 영역에서 벗어나 국가 기본을 저해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런 인권위가 왜 인권의 핵심이 되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만은 눈을 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눈을 감는다면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꼴이다.
통일부도 더 이상 남북관계 안정이라는 이상한 명분을 내세워 북한 눈치를 보지 말고 탈북자 가족의 사형 집행 정지를 북한에 요청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