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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특파원칼럼'란에 이 신문 김기훈 뉴욕특파원이 쓴 'LA 가정부 나선 한국인 주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LA 출장을 가기 위해 뉴욕공항 탑승구에 앉아 있는데 50대 후반의 한국인 주부가 다가왔다. “이 탑승구가 LA행이 맞나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비행기 출발 때까지 30분간 이어졌다.
옷차림은 수수했지만 단정한 용모에 기품 있게 생긴 주부 임씨는 LA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에 관광비자로 LA에 들어와 6개월 동안 일하다가 비자기간이 끝나자 한국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부산 사투리를 썼다. 남편은 중소기업의 이사로 일했고 외동아들도 튼튼하게 자라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한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였다. 하지만 4년 전 남편이 명예퇴직을 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명퇴 후 남편과 함께 조그마한 수퍼마켓을 열었으나 장사가 잘 안됐다. 투자한 명퇴금을 한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빨리 가게를 정리했다.
임씨는 국민연금을 기대하자니 정부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남편 퇴직금을 꽁꽁 묶어 두고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것마저 없어지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다행히 아들은 대학을 졸업시켰다. 하지만 여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과 친구들과 빈둥거리는 아들을 보다 못해 구직전선에 나섰다. 그러나 실패했다.
“한국에는 정말 일자리가 없어요. 기업들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가 인건비 싸다고 거기 가서 공장 짓죠. 한국 내에서는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가리지 않고 막 자르죠. 식당이나 수퍼를 하려고 해도 주변에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나요.”
고민하던 임씨는 결국 서울 청담동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2년간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봐줬으나 아이들이 성장하자 ‘정리해고’ 당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한 인력소개소에서 LA 가정부를 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 봉급은 한국보다 50% 이상 많은 2000~2300달러다.
임씨는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다”며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남편·자식과 헤어져 사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기자)
“굶어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잖아요.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다 구하다 안 돼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임씨의 입에서 가시 돋친 말들이 터져 나왔다.
“정치를 어떻게 했는지 서민들은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임씨는 현재 LA 남쪽 어바인에서 살고 있다. 교포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아이를 봐주고 청소와 부엌일을 한다. 2~3개월마다 모은 돈을 집에 부친다. 주변에 자기처럼 서울에서 가정부로 온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자존심 때문에 서로 알은체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부유층들이 100달러짜리 지폐가 가득 든 지갑을 들고 쇼핑하는 모습을 볼 때면 눈물이 나요. 어쩌다 내 처지가 이렇게 됐나 싶고….”
임씨는 6개월 뒤에는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뉴욕에 친지를 만나러 왔다. 환갑을 앞둔 그녀는 “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한다”면서도 “내가 1960년대식의 고향 떠난 가정부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비행기에 타려고 가방을 집는 손이 거칠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