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바른사회 상임집행위원인 김민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가 쓴 시론 <배대법원장의 '사고(事故)발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법원으로 거듭나겠다는 말을 거듭해 왔다. 지난 2월 신임 법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는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까지 강조하였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기 위해 노력하자는 대법원장의 발언은 너무나 원론적이고 당위적인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토를 달거나 반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지방법원을 순회하는 자리에서 대법원장이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내용들은 그 도가 넘쳐 적절치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법원장의 발언 내용에 대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발언들이 법관들에게 영장심사를 강화하고 증거기록들을 보다 세밀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서 대법원장의 본래 의도와 생각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말이란 처음과 끝을 모두 들어야 그 사람의 진위가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언을 할 당시의 앞뒤 사정을 무시해 버리고 말의 토막만을 잘라서 그 적절성을 따진다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말의 한 토막이라 하여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개인들 간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사법부의 수장이 검찰이나 변호사에 대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도리를 벗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검찰은 검찰 나름대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검찰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고, 변호사들 역시 법조비리의 주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자정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때에 검찰과 변호사들에 대한 대법원장의 이 말 한마디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해 대법원장은 진지한 고민을 해 보았는지를 묻고 싶다.

    국민들이 법원만을 신뢰하고 존경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법원, 검찰, 그리고 변호사가 모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기 위해서 다른 법조 파트너들을 폄하해 버린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과 변호사에 대해 곱지 않았던 시선들이 대법원장의 이러한 말들로 인하여 국민들의 인식에 고착화된다면 검찰과 변호사들이 자기반성과 개혁을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더욱 더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염려가 된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감성적이고 선동적인 말로 국민들의 존경을 이끌어낼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감성적인 주장은 당장에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에는 더욱 큰 실망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요즘 세간에는 이른바 “사고(事故) 발언”이 유행인 것 같다. 무책임하고 황당한 발언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고 발언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장이 의도적으로 사고 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할 정도의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법원장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일선에서 재판을 하는 판사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사법관에도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