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100$수준 대통령, 2만$수준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백만 홍보수석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100달러 시대에 입던 옷을 2만 달러 시대에도 입어야 합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승만 정권 때 미국에 맡겼던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을 찾아올 때가 됐다는 내용이다. 홍보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은 고교교장,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총장”이라는 말로 유명세를 탔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승만 대통령은 100달러 수준, 노무현 대통령은 2만 달러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마치 노무현 정권 덕에 나라가 2만 달러 수준에 도달했다는 투다.

    겉으로 드러난 통계만 보면 그런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이 1만6291달러다. 지금 추세면 내년쯤 2만 달러를 넘어설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속 빈 강정이다. 환율이 워낙 빠른 속도로 절상되고 있어서 달러로 표시한 소득이 그만큼 늘어났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 지난 3년 새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3~4% 수준을 맴돌았다. 3년 연속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돈 것은 이 나라 경제사에 없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현 정권 아래서 인도와 브라질에게 밀리며 12위로 추락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집권세력이 2만 달러 시대 타령을 하니 “이 나라가 2만 달러 문턱까지 오는데 당신들이 뭐 보탠 게 있느냐”는 대꾸가 절로 나온다.

    부아가 치미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이 1953년 67달러에서 50여 년 만에 243배로 늘어난 과정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다. 세계가 모두 기적이라고 부러워하는 역사다. 그러나 이 정권은 그 자랑스러운 역사에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세월”이라며 침을 뱉었다. 나라가 온통 하자투성이인 것처럼 트집을 잡으며 ‘오늘의 한국’을 만든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끌어내 과거사 심판대에 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그래 놓고 느닷없이 나라가 2만 달러 수준이라는 걸 자랑 삼아 내세우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나라 안보를 미국에 기대는 것은 2만 달러 수준 나라의 자존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미(韓美)연합사 체제를 허물면서 전시작통권을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체제에선 전쟁이 발발하면 1300조원어치의 미국 군사장비를 거저 빌려 쓸 수 있다. 이 정권은 이렇게 좋은 조건의 계약을 일부러 파기하는 대신 2020년까지 620조원 자주국방 예산의 상당 부분을 퍼부어서 미국 군사장비를 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미 군사장비를 빌려 쓰는 것은 예속이고, 미 군사장비를 사오는 것은 자주라는 논리다.

    노무현 정권의 이런 사고방식대로라면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의 자존심도 체면도 내팽개친 100달러 수준 지도자임에 틀림 없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1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군사원조를 지원 받았다. 1953년 우리나라 GDP 13억 달러와 거의 맞먹는 금액이다. 미국과 특수관계인 이스라엘, 미국이 전쟁을 대신 치렀던 베트남을 제외하고 국민 1인당 기준으로 한국만큼 많은 원조를 얻어낸 나라는 없었다. 오죽하면 당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이승만이) 공갈협박으로 돈을 뜯어낸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이렇게 남의 나라 돈을 끌어다 나라를 다져 놓은 토대 위에서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2만 달러 수준 나라는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그렇게 키운 나라를 물려 받아 3년째 제자리 걸음을 시켜놓고도 나라 수준에 맞는 품위 유지비를 써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있다. 나라살림 키우는 데는 100달러 수준도 못 되면서 씀씀이만 3만 달러 수준이라는 얘기다. 철부지 재벌 2세 모습 딱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