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사행산업 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 상임대표인 이우갑 고한 천주교회 주임신부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바다로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바다’ 이야기가 세간을 더위로 몰아넣고 있다. ‘바다’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바다 밑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괴물이 영화에서처럼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납량특집 이야기들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다 이야기’와 관련된 배후, 이권에 대한 의혹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바다 이야기’가 ‘정치 이야기’로 옮아 가면서 대한민국을 도박의 바다로 만들었던 문제의 초점이 흐려져선 안 된다. ‘바다 이야기’의 실제 뿌리,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숱한 인·허가에 대한 의혹과 우리나라의 도박 산업 문제, 도박 중독자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떠올려 파헤쳐야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 사행 도박 산업은 급신장하였다. 2000년 우리나라 전체 레저 시장에서 사행 도박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27.8%였던 것이 2003년에는 54.6%, 2004년에는 51.3%가 되었다. 우리나라 관광, 여행, 취미 오락, 스포츠, 공연, 전시 관람 등 전체 레저 산업 시장 중에 사실은 절반 이상이 ‘도박’과 관련된 시장이다. 이 시장 규모에는 지금 문제가 되는 ‘바다 이야기’ 등의 총 발행 30조원 가량의 상품권 시장은 포함되지도 않은 것이다.

    이런 급작스러운 사행 도박 시장의 뻥튀기 확장은 분명히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난 2005년에 이루어진 외국인 카지노 세 곳의 신규 설립만 해도 그렇다. 전문가들이 도심에 카지노가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수 차례 전달하고 기존의 카지노 업계가 모두 적자에 시달려 반대를 해도 당시 정동채 장관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고 카지노 설립을 허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남 순천, 강원도 원주 등에서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민간 건물에 마사회 경마 장외 발매소가 설치·추진되고 있다.

    세간에 대통령의 조카가 바다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되고 청와대는 강하게 부정을 하고 있다. 세간의 잘못된 의혹은 바로잡고 부정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가 도박장이 되고, 도박장의 확산이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작스럽게, 비정상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의혹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제 곪을 대로 곪아 도박 문화가 골목길까지 스며들고 우리 어린 학생들까지 도박꾼으로 만드는 이 현실을 초래한 정부를 탓하는 것을 한가하게 ‘정치 공세’로 묵살할 것인가? 부정과 막무가내의 잘못된 정책집행 속에 무너지는 가정, 자살로 내몰리는 국민들, 그리고 건강한 노동보다는 대박과 한탕을 꿈꾸며 결국은 절망하는 주위의 숱한 선량한 이웃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할 것인가?

    돈만 되면 그것이 옳건 그르건, 국민을 죽이든 살리든,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허가해 주고 그 아픔과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하는 이런 모습, 이것이 정치인가, 아니면 정말 국민들의 삶은 모르는 것인가?

    우리들이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바다 이야기’는 심청전이나 별주부전이다. 그 모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 몸을 던지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듣는 ‘바다 이야기’는 참담한 비극이다. 희생과 사랑 대신 욕심과 부정, 의혹이 가득하고 그 결과는 수백만의 도박 중독자와 희망 없는 이혼, 자살 이야기이다. 오늘부터 국회가 다시 시작된다. 당장 떠오르는 세간의 의혹들, 부정과 잘못은 정말 깨끗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정치 공세와 방어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만연한 도박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