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바른사회시민회의 상임 집행위원인 김민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차기 헌법재판소장에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번에도 대통령의 코드인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여성 헌법재판관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와 환영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사시 17회가 대법관, 검찰총장에 이어서 헌법재판소장에까지 임명되는 것은 대통령의 코드인사가 사법부마저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마다 ‘코드인사, 왕의 남자, 회전문 인사’ 등의 논란이 항상 있었음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교육부총리와 법무부장관의 인사를 두고 정치권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강변하면서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중용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사 중에는 이른바 코드인사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 것이 있고 반대로 코드인사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는 인사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업무수행을 보좌하는 각료를 인선함에 있어서는 대통령과 뜻이 잘 통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헌법기관에 대한 임명은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드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 것이다. 전효숙 재판관의 헌법재판소장 내정을 두고 코드인사라며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전 재판관이 단순히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이유만이 아니다. 전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이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주요 사건들에서 소수 의견을 밝혔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때에도 전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냈고,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서도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으며, 동의대 사건 시위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인정을 반대하면서 시위진압 도중 숨진 경찰관 유족들이 낸 헌법소원에서도 ‘각하’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관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자신의 소신대로 반대 또는 소수의견을 내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우연찮게도 대통령이나 정부의 의중과 유사하다는 의구심을 낳았다.

    헌법재판소장은 자신의 소신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도의 정치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그 성격상 정치적 사건을 헌법이념에 따라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균형감각을 잃고 편향적 시각을 갖거나 정치적 외풍을 이겨내지 못하면 헌법이념을 구현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존립 근거가 상실될 수 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장이라는 자리는 그 어떤 자리보다도 풍부한 경륜과 법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 임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는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를 견제하여 국가권력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헌법기관이다.

    이러한 헌법기관의 수장을 임명함에 있어서 코드인사가 이루어진다면 국가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자신과 뜻이 얼마나 잘 통하느냐를 따지지 말고,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재판소에 어떠한 사명을 주었으며, 어떠한 인물이 헌법재판소장이 되었을 때 이러한 헌법적 사명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물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줄 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