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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한나라당이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날 오후 4시 8분경 나경원 대변인은 갑작스레 국회 기자실을 찾았다.
바쁜 걸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나 대변인은 "일부 혼선이 있는 것 같아서 찾아왔다"며 "한나라당은 김병준 교육부총리에 대한 검찰 고발여부를 결정한 바 없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한나라당은 이 보다 100분 가량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부총리를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 법률지원단 소속이며 인권위원인 정인봉 변호사는 오후 2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고 "김 부총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언론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등의 방자한 행위를 해 한나라당으로서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며 고발배경까지 설명했다. 정 변호사가 제출한 고발장의 고발인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로 적시돼 있다. 정 변호사 개인자격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김 부총리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100분이 채 안 돼 이 같은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나 대변인은 "당에서 고발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며 "당의 입장은 오전 회의에서 나온 것처럼 검찰이 알아서 수사를 하라는 것이지 고발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부총리에 대한 검찰고발조치는 정 변호사 개인 입장이지 당의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는 나 대변인의 발표 이후 정 변호사에게 전후 상황을 묻자 정 변호사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전에 인권위원장과 논의했다"며 고발인 역시 정 변호사 자신이 아닌 당의 이름으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당 인권위원장 장윤석 의원에게 사실관계를 묻자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한 반응을 나타냈다. 장 의원은 정 변호사가 한나라당 이름으로 고발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당론을 모아 제출한 고발장은 아니다. 당 입장에서 고발하려면 최고위원회의나 주요당직자회의 등에서 고발을 하자는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의원은 정 변호사가 김 부총리를 사기죄로 고발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정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장 의원은 이날 오전 김 부총리 고발에 대한 논의를 했다. 장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정 변호사가 오전 장 의원에게 김 부총리를 사기죄로 고발해야 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장 의원도 정 변호사의 이 같은 주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장 의원은 "정 변호사가 당 인권위원이고 법률지원단 소속이기 때문에 아침에 고발을 해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본인이)'하면 하지요'라고 말해 고발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론을 모아서 한 고발은 아니었다"며 "고발장 자체는 안보고 (정 변호사에게)내시려면 내라고 했다"고 말한 뒤 "그렇다고 당 인권위원회가 고발장을 낸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 거취 문제는 정치권 뿐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촉각을 세우고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김 부총리를 사기죄로 고발하면서 당내 논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중차대한 문제를 '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가볍게 다룬 것이다. 이미 접수된 고발장에 대해 어떻게 처리 할 것이냐고 묻자 노무현 정권을 '무능하다' 비판하고 자신들이 유일한 대안세력이라 주장하는 제1야당이 내놓은 답변은 "글쎄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