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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 열며'란에 이 신문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이 휩쓸고 간 자리에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월드컵의 환호는 가라앉고 미사일의 긴장은 높아졌다. 일본에서는 대북 선제공격론마저 일고 있다. 때마침 영화 '한반도'가 13일 개봉한다. 우연치고는 필연 같다. 충무로의 승부사로 통하는 강우석 감독의 15번째 작품이다. '실미도'로 관객 1000만 시대를 열었던 그가 작심하고 현실정치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지난주 경기대 김기봉 교수와 함께 '한반도'의 시사회장에 갔다. 김 교수는 '영화는 시대의 안테나'라고 믿는 역사학자다. '팩션시대-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를 내기도 했다. '한반도'는 전형적인 팩션(사실과 허구의 결합)이다. 경의선의 소유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에서 조선이 일본에 철도 운영권을 넘겼다고 주장한다. 또 한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경제 지원을 끊겠다고 목을 조여온다.
시사회장을 나오는 순간, 발길이 무거워졌다.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는 느낌이었다. 100억원대의 상업영화가 현재진행형의 국제정치에, 그것도 한·일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충무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으나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김 교수가 한마디를 던졌다. "북한이 보이지 않네요." 그랬다. '한반도'에는 북한의 역할이 없다. 일본의 이지스함이 동해로 발진하고, 남한의 전투기가 출동해도 북한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북한이 부담스러운 존재였을까.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대치상황에 집중하느라 북한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영화에서 외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일본의 가공할 협박에 한국의 지도부는 분열된다.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진상 규명을, 국무총리는 눈앞의 '밥그릇'을 강조한다. 그 사이 일본은 중국과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개념이다. 싫든 좋든 주변국과의 관계는 우리의 오늘을 결정짓는 핵심변수다. 그럼에도 '한반도'는 우리 내부의 파워게임, 명분과 실리라는 이분법에만 집중한다. 동북아의 역학에 대한 이해가 증발된 셈이다. 혹시라도 현재의 '미사일 게임'에서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통치권에 대한 예고편은 아닐지. 그렇다면 감독은 대단한 예언자다.
지난주 시작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인상적인 장면 하나. 안시성에서 당나라의 총공세를 막아내던 연개소문은 당군(唐軍)이 곧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 북방의 설연타(薛延陀)가 당을 공격, 당 태종이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작전'을 짜놓았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임기환 교수는 "연개소문이 안시성에서 싸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고구려와 설연타의 연결은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역사적 상상력은 이런 것이다.
반면 '한반도'는 교과서.독도문제 등에 속상해했던 한국인의 집단정서를 건드린다. 민족과 과거를 앞세우는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대의보다 경제를 내세우는 국무총리는 '뉴라이트'를 닮았다. 그들은 대립만 할 뿐 '반쪽의 한반도'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갑갑하다. "반일(反日)이 아닌 극일(克日)을 찾았다"는 감독의 설명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우리만의 한반도는 국제사회에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개봉 전 충무로에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한반도'의 홍보대사라는 농담이 돌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됐다. 시대의 아이러니다. 그렇게 급박한 게 국제정치다. 영화는 더 똑똑했어야 했다. 100년 후 우리는 '한반도'로 지금의 한반도를 공부할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