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반도 불행의 뿌리는 무엇이며, 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실체가 한결 명확하게 부각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다 망한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수구 냉전, 시대 착오다”라는 말이 홍수처럼 범람했었다. ‘비판’이 있었다면 그것은 김정일 인권 말살에 대한 것, 그의 국제범죄에 대한 것, 그의 변함 없는 일방적 대남(對南) 자세에 대한 것, 국제적 약속을 저버린 그의 은밀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막대한 비자금을 퍼준 것에 대한 것 등 비판해 마땅한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조적 ‘햇볕’ 일변도 논자들은 그런 정당한 비판마저 ‘반(反)통일’ ‘수구 냉전’이라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김정일이 쏜 미사일 7 발은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몰아치기’ 풍조를 거의 완벽하게 ‘넉아웃’시키는 데 역설적으로 기여했다. ‘햇볕’과 ‘오냐 오냐’만 무조건 베풀어 주면 김정일이 미사일 도박 아닌 개혁·개방 쪽으로 변할 것이라던 그들의 장담이 졸지에 ‘꽝’이 되고 만 까닭이다.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김정일의 모든 ‘나쁜 짓’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있는 친(親)김정일 운동 단체들의 존재는 논외(論外)로 친다고 하자. 그들은 아무리 나무란다 해도 소용이 없는 구제 불능의 존재들이니까. 그들은 이미 ‘맥아더 동상 철거 기도’ 때부터 “그래, 나 그런 사람이다. 어쩔래?” 하는 식으로 나왔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정면 싸움 이외에 달리 대처 방법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좌익 근처에도 못 갈 정도로 세속화 되고 소시민화(化)했으면서도 일단 말을 하고 글을 썼다 하면 으레 친(親)김정일 세력에는 ‘새롭다’는 투로 ‘진보’ 운운으로 덮어주고, 반(反)김정일 세력에는 ‘낡았다’는 투로 ‘보수’ 운운으로 덧칠해주는 일군(一群)의 회색지대인(人)들의 거취인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만은 이번의 미사일사태를 계기로 김정일이 과연 교조적 ‘햇볕’ 하나만으로 달라질 수 있는가를 끝까지 따져볼 만하다. 그런 회색지대인들의 일부라도 시각 교정이 가능하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대한민국 편을 늘리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조적 ‘햇볕’ 일변도 지지자들은 김정일의 ‘나쁜 짓’을 비판하면 흔히 ‘지금 김정일을 흔들어 가지고 무슨 실익이 있느냐?’ ‘불쌍한 북한 동포 지원을 외면하자는 것이냐?’ 하는 논리들을 펴곤 했다. 아마 지금도 일부는 “미국이 클린턴 말기 때처럼 대북 직접 협상을 시도하지 않고 부시처럼 김정일 비자금 숨통을 끊으니까 그로서는 죽기 살기로 나올 수밖에 더 있느냐?”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만약 한 나라의 책임 있는 위정자라면 누가 원화(貨) 위조 지폐를 만들어 뿌려도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가만히 팔짱만 끼고 앉아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또 김정일에 갖다 준 비자금이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데 사용되었는지, 우리를 겨냥한 스커드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었는지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김정일은 결국 남쪽의 돈을 수령독재 유지를 위한 ‘미사일 협박비(費)’로 쓰면 썼지 체제개혁비(費)로는 쓰지 않았다. 체제개혁을 ‘수령독재의 위기’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김정일에 햇볕 쬐기’는 이 점에서 오히려 ‘실익’이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한반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오늘의 한반도 상황은 ‘친(親)대한민국-반(反)김정일 수령독재’냐 아니면 ‘친(親)김정일 수령독재-반(反)대한민국’이냐의 본질적인 대결이 겉치장을 벗은 국면이다. ‘미사일 소동’은 그런 상황의 본질을 확연하게 드러낸 사태였다. 따라서 ‘노무현 식(式) 침묵’은 그런 실상(實相)을 모호하게 흐리고 덮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사태에 대한 왜곡 없는 분석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