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김민배 사회부장이 쓴 '귀 막은 전교조 어디로 가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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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맛비가 내리는 21일 오후 1시30분 부천시 S고교. 학부모 20여명이 삼삼오오 교장실로 모여들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전교조 소속 이 학교 이 모 교사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민족에 충성을 강요, 난 경례 않는다” “군대서 살인기술, 복종문화만 배워 군에 안가는 게 좋아”…. 학부모 140명이 학생들에게 국기와 국가를 부정하는 이념교육을 시키는 교사 이씨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낸 게 지난달 9일. 도 교육청이 그간 두 번의 현장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도 교육청의 세 번째 현장조사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더 이상 교육청을 신뢰할 수 없다. 고3은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고3 학부모가 이런 일에까지 이토록 신경 써야 하는가. 자기 자녀라면 이런 교육을 받도록 손놓고 있겠는가.” 한 학부모의 항변이었다. 어느 학부모가 “교사 이씨가 최소한 다른 학교로 전보됐으면 좋겠다”고 하자, 다른 학부모는 “내 자식만 소중한가. 또 그 학교에서 편향적인 세뇌교육을 할 텐데 그럼 그 학교 학부모들이 또 우리와 같은 일을 겪으란 말인가. 전보 이상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과 직원 2명과 중등교육과 장학관·장학사의 교사 이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학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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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시각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 40대 안팎의 사람 서너명이 우산을 들고 서있다. ‘전교조 수뇌부’ 철야농성 시위대다. 이들은 오후 7시쯤 수업을 마친 100여명의 ‘응원군’이 오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이 시위는 월드컵 열기에 묻히고, 언론에 비치지도 않지만 벌써 13일째다. 도로에 차량 두 대를 세워놓고 밤엔 차 안에서 잠을 자거나 노상에 은박 스티로폼을 깔고 침낭 속에서 자며 장기시위를 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청사 후문 도로에 걸어놓은 10여개의 현수막에 이들의 주장이 담겨있다.

    ‘교육주체 분열시키는 차등성과급 폐지하자’ ‘방과 후 학교 폐지’ ‘국민을 우롱하는 사립학교법 개악 야합 즉각 중단하라’….

    이들의 귀에 미 매사추세츠주가 학생들의 성적 향상 정도에 따라 연 최고 5000달러(약 500만원)까지 교사 급여를 더 주기로 하고, 애리조나·플로리다 등 5개주가 이에 가세했다는 얘기가 들어올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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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들어 전교조를 비판하는 ‘용기’를 낸 이들에겐 각계의 지지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나치게 교사 집단만을 대변하느라 전교조가 학생·학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립되고 있다”고 옛 동료들에게 ‘아픈 지적’을 한 전교조 창립멤버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나, “전교조는 이젠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이라고 지적한 전교조 1세대 이인규 서울미술고 교감이 그랬다. 학생들에게 비상식적 이념교육을 주입하는 교사에 맞서 싸우는 부천 S고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내 몫까지 싸워달라” “그 용기에 감탄한다”는 학부모들의 폭발적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1986년 ‘의식있는’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이 모태(母胎)가 되어 탄생해 교육개혁의 가시밭길을 걸은 끝에 올해로 합법화 7년을 맞는 9만 교사단체 전교조―. 사회부 데스크에서 바라본 전교조는 지금 학부모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최악의 위기’ 국면을 맞고 있으나 그들만 이 같은 현실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