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19일 한 강연에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나 정당의 정강·정책 같은 것을 무시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한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선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총선은 탄핵 하나에 모든 후보자·정당에 대한 평가가 묻혔고 이번 지방선거도 그런 면이 있다. 이런 식의 선거는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성숙도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고도 했다.

    구절구절이 옳은 말뿐이다. 만일 그가 정치평론가라면 말이다. 그러나 오세훈씨는 정치평론가가 아니다. 열흘 후엔 대한민국 최대의 자치단체인 서울시장에 취임할 정치인이다. 그가 이끌어 가야 할 서울시는 한 해 예산이 15조원에 공무원 숫자만 5만여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조직다운 규모의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없는 오 당선자로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 들어야 정상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두끈을 다시 묶어야 할 처지다.

    5·31 지방선거는 유권자들이 오 당선자와 같은 한나라당 후보들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정권의 무능과 무책을 보다 보다 못한 국민이 정권을 심판한다는 생각으로 표를 던졌던 선거다. “한나라당에 기대가 많아서 한나라당을 찍었다”는 유권자는 9%(엠비존 5월31일 조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표를 던져 오세훈 후보를 당선자로 만들었던 서울시민들은 지금 ‘오세훈 서울시’에 대한 걱정이 크다. 민원이 들어오면 담당부서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가려내는 데만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 걸릴 정도로 복잡하다는 서울 시정을 잘 꾸릴 수 있을지, 그 많은 공무원 가운데 유능하고 정직한 사람을 골라 일을 맡길 수 있을지, 국민 세금으로 만든 15조원의 예산을 쓸 데 쓰더라도 아낄 데는 아낄 수 있을지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시민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오 당선자는 한가한 정치평론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본업을 챙겨야 한다. 만일 오 당선자가 실패한 시장으로 끝나 버리면 그때 5·31 선거의 유권자는 오 당선자 말대로 ‘분위기에 휩쓸려 투표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서울시민을 ‘어리석은 유권자’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경험없는 후보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읽을 줄 알았던 시민으로 만들지는 모두가 오 당선자가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 당선자는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짐 무겁고 갈 길 먼 서울시장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