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잘된 것이고,그에 비하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다소 뒷걸음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대한재향군인회(향군) 지도부와의 대화 중에 했다는 말이다. 어제 동아일보가 이 같이 보도한 데 대해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이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다. 

    하긴 노 대통령이 6·15선언을 기본합의서(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교해서 소극적으로 평가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 받아 평화번영정책을 표방한 노 대통령이 6·15선언을 상대적으로라도 가벼이 여기려 할 리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1992년 기본합의서 및 부속 문서가 6·15선언으로 구체화됐으나 북핵문제로 후퇴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는 해명은 좀 의아하다. 6·15선언은 원칙적 개괄적 선언이었고 기본합의서는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한 합의였다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어쨌든 김대중 정부 이래 아주 잊혀지고만 듯했던 기본합의서의 존재를 노 대통령이 확인해준 셈이 됐다. 이 참에 하는 말이지만 남북한 간 화해·협력과 공영 및 평화통일 의지를 담고 있는 종합적 문서는 남북기본합의서다. 3년간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과 2차례의 합의서 문안정리를 위한 실무접촉,그리고 8차례의 본회담을 거친 끝에 나온 정부 간 공식 문서였다.

    그러나 이 합의서는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가 올린 실적이었다는 게 가장 큰 결점이었을 수 있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희망과 의지,그리고 노벨평화상의 광채가 기본합의서의 빛을 압도해버린 것도 사실이다. 6·15선언에 대해서는 지금도 화려한 스폿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노령, 지병을 비롯한 여러 장애 요인들을 무릅쓰고 북행을 결행하려는 뜻도 달리 있지 않을 것이다. 6·15선언의 의의를 재확인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 아니겠는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은 정부측의 기대일 테고….

    가고 싶다는 것이야 어쩌겠는가. 다만 이 점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6·15선언의 내용 거의 대부분은 기본합의서에 이미 반영됐다. 특히 북한 측이 끈질기게 강조해온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원칙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서 표명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북측이 6·15선언을 앞세우는 것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절충 가능한 방안’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남북관계 문서라는 점도 크게 한몫 했을 것이지만).

    앞으로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문서들의 운명은 북한의 판단과 필요에 따라 결정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북한 김 위원장은 종신 통치자인데 비해 남한 대통령은 5년 임기의 한시적 국정 관리자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 혁혁한 성과를 올리려면 북측이 요구하는 ‘새로운 항목’을 담은 ‘새 문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 때마다 남측엔 족쇄 하나가, 북측엔 고삐 하나가 보태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무리일까.

    어쩌면 김 전 대통령의 방북 효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 대통령은 제발 ‘새 문서’ 생산에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북한 군부가 28일 “열차를 통한 그 누구의 평양방문이나…정략적 기도에서 출발된 것”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김 전 대통령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언제나 외면하고 무시하고 부인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아닌 말로, 노 대통령이 ‘북한 핵은 방어용’임을 문서로 확인해주는 상황이 된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청와대 측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지만 노 대통령이 향군 지도부와의 대화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렇게 이해해주는 것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남북이 기본합의서와 함께 발효시켰던 ‘비핵화 공동선언’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