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격을 당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박가년'이라고 부르고 성적으로 비하하며 “통쾌하다”는 내용의 '시'를 써 파문을 일으킨 시인 송명호씨가 쏟아지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원색적으로 쓰지 못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송씨는 24일 자신의 블로그(blog.ohmynews.com/songpoet)에 딸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보다 더 원색적으로 더 비열하게 더 더럽게 느껴지도록 써야 하는데 내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 정도밖에 못 썼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다. 박가가 독재자의 딸이므로 독재자의 딸이라고 했다”며 “리얼리즘이란 작품 속의 현식과 작품 밖의 현실이 일치하도록 쓰는 거다. 이런 시는 이런 형식의 시를 쓸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왜 무엇이 나쁘다고 그러느냐. 내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 정도 밖에 못 쓴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악수를 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붙이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송씨는 “악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나 손 한 번 잡아보려고 좋아라 몰려드는 사람이나 비정상 아니냐"면서 "그래서 손에 성기가 달렸다고 쓴 거다”고 '난해한' 해석을 붙였다.

    그는 “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는데 통쾌하다는 내용의 시를 내가 썼다”며 “문인일 경우 파렴치범으로 유명해지더라도 책이 팔리곤 하지만 두 권의 시집은 절판된 지 거의 10년이라 나에게는 그런 이득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또 테러현행범 지충호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교하며 “누가 더 잔인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칼로 뺨을 그은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지만 박정희는 가짜 간첩을 7명이나 만들어 대법원 판결이 난지 12시간 만에 사형 시켰다. 누가 더 잔인하냐”고 말했다.

    그는 “알량한 시 한 수 때문에, 민족문화작가회의 회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조선·중앙·동아에서 동네방네 떠들고 말았다”며 “이들은 우려먹기 시작할 것이다. 흥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일거리가 생겼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자신의 시로 인해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충도 이야기했다. “딸은 학교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걸핏하면 운다. 아들의 싸이월드는 방문객이 폭주했고 드디어 신변의 불안까지 느끼는 모양이다”며 “협박범들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야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송씨의 이번 글에 더 발끈하는 모습이다. 송씨의 블로그에는 “지난날 사라진 이념의 독안에서 헤적거리는 미물같다”(‘사고의 미숙아’) “온갖 추잡스런 단어로 도배돼 있는 글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수 있느냐”(‘즐기냐?’) 등 비난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한편 민족문화작가회의(이사장 정희성)는 송씨의 제명을 요구하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를 논의하기 위해 이사회 소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회의는 또한 ‘송씨 글에 대한 공식 입장’이란 자료를 배포해 “송씨의 글은 작가회의 입장과 무관한 개인 글”이라며 “저질 욕설의 남발 등으로 문학적 형상성을 인정할 수 없었고 시의 내용이 대다수 회원의 정서와 상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발전이나 국민적 통합 등에 기여하기보다 문학의 긍정적 역할과 단체의 우상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다음은 송명호씨 글 전문]


    내 블로그의 이름은 우시하이다. 우시하란 만주어로 별이란 뜻이다. 그래서 부제를 <세외(世外)에 산다>고 하였다. 나는 솔직히 세상의 밖에 산다. 21세기에 동양학 원전을 읽고 있으며 이를 번역하였다. <예기집설대전>이다. 아무도 출판해 주는 자가 없어 자비로 출판하였다. 무려 인건비만 1억 6천만 원이 들었다. 몇 권을 팔았느냐고 약 70권쯤 팔았다. 그래서 받은 돈이 200만 원 정도다. 돈은 어디서 났느냐고 아파트를 은행에 저당 잡히었다. 앞으로 팔린다는 희망이 있느냐고. 없다. 이만하면 세상 밖에 사는 셈 아닌가.

    그런 내가 세상 속에서 유명해졌다. 파렴치한 인간으로 아주 유명해졌다. 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는데 이를 통쾌하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바로 <박가 년 @지는 손에 달렸다지>라는 졸시를 내가 썼다. 이 시가 그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문예 사이트에 내가 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20회쯤 된다. 그런데 단 하루만에 7000여 회를 넘겼다. 야단법석이었다. 운영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앙선관위에서도 삭제하라는 메일을 받았다고 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해서 전화가 울리고 나를 비난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딸은 학교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걸핏하면 운다. 아들의 싸이월드는 방문객이 폭주하였다. 아들은 드디어 신변의 불안까지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아내에게 불안을 호소하였다. 아내가 학교까지 가야 하였다.

    문인일 경우에는 파렴치범으로 유명해지더라도 책이 팔리곤 한다. 나에게는 그런 이득도 없다. 두 권의 시집은 절판된 지 거의 10년이요, 위에서 말했듯이 <예기집설대전>은 결코 팔릴 책이 아니다. 협박범들을 피하여 어디론가 숨어야 할 판이다. 드디어 딸이 말한다. 아빠가 세상에서 매장되면 밥을 어떻게 먹느냐고, 그러다 또 운다. 한평생 누구 딸이라 할 것인데 어떻게 사느냐고.

    내가 말한다.

    딸아, 아버지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였다. 박가를 독재자의 딸이므로 독재자의 딸이라 하였다.

    아버지와 딸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도 아빠의 딸이라서 숨어서 살아야 되잖아요.

    아니란다. 그녀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란 점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처음부터 그 때문에 유명해진 것 아니냐.

    그렇지만 시를 왜 그런 식으로 써요.

    글쎄, 그런 시는 그보다 더 원색적으로 더 비열하게 더 더럽게 느껴지도록 써야 하는 법이란다. 내 이름은 김삼순 기억나니, 삼순이 못 생기게 보이려고 살찌운 거 말이다. 리얼리즘이란 작품 속의 현실과 작품 밖의 현실이 일치하도록 쓰는 거란다. 시 속에서는 시를 구성하는 말투나 어휘가 현실을 닮아야 하겠지. 현실 속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아빠보다 더 심한 욕을 하지 않니. 또 아빠보다 더 심한 욕을 한 시가 이미 세상 속에 있었단다. 아빠가 시를 잘 썼다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야. 이런 시에는 이런 형식의 시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니. 듣고 있던 아내가 거든다. 세상에 그런 욕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왜 무엇이 나쁘다고 그래, 내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 정도밖에 못 쓴 거야. 악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나 손 한 번 잡아보고 좋아라 몰려드는 사람이나 비정상 아니냐. 그래서 손에 성기가 달렸다고 쓴 거야.

    아빠 박정희 욕은 왜 그게 뭐해요.

    하여간 박정희는 술집에서 죽었지 않냐. 야전 사령부의 벙커나 고속도로나 지방 순시를 가다가 헬리콥터에서 죽은 것이 아니지 않냐. 그래서 그런 말을 연구해서 비유적으로 쓴 거야.

    하여간 아빠와 딸이 관련이 있다는 거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친일파 딸이 아버지의 행위를 어떻게 인식하고 아버지의 친일에 대한 어떤 반성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딸에게 지운 멍에를 지워주도록 노력할 수가 있지. 그러나 그 반대를 넘어서서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시하고 죽은 아버지의 부당함을 폭로한 자에게 복수의 염을 비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니.

    이런 일이 있었지. 네이버의 글을 다운 받아 읽어 보자고.

    <네번째는 박대표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정체불명의 당을 만들어 몸값 올리기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노풍이 바닥을 치던 시절 정몽준 국민통합21대표는 박대표를 영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합니다. 하지만 박대표 가라사대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정체성을 잘 모르겠고,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조선일보] 2002-10-16 (종합) 뉴스 04면)는 말과 함께 다시 정체성 시비를 겁니다. 왜 또 이번엔 정몽준의원의 정체성 문제가 나온 것일까요. 그건 바로 정몽준 캠프에서 일하던 강신옥 국민통합 21 창당기획단장 때문이었습니다. 강신옥 전 의원이 바로 김재규의 변호사였던 것이죠. 이것으로 박대표의 정체성 시비는 박정희 전대통령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결국 강신옥 단장이 사퇴하고 별짓 다 했지만 “평소 제 정치적 소신과는 안 맞는 것 같다”며 “현 상태로선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범 김재규를 의인(義人)이라고 말한 강신옥(姜信玉) 전 의원을 들어 “결국 국민통합21의 정체성의 문제”([조선일보] 2002-11-07 (정치/해설) 뉴스 05면) 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한나라당에 복귀합니다. - psrcc님의 블로그에서

    김재규의 변호사로 활동하였던 강신옥 변호사와는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자세에서 우리가 무엇을 짐작할 수 있겠니. 그뿐인가. 국회의원의 소명이 무어야. 법안을 만들어 억울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해 주어야지.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민생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악수하는 것 아닌가. 악수한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올라가나. 결국 사전 선거운동하자는 것 아닌가.

    아빠 하여간 나는 학교에 못 가요.

    가야 돼 아버지가 그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가야 돼.

    아빠를 잔인한 사람으로 보잖아요.

    칼로 뺨을 그은 사람은 잔인한 사람이야. 유영철 알지, 사람을 23명이나 죽였어.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어. 노무현 대통령은 사형을 집행하라는 사인을 하지 않고 있어. 왜일까. 유영철을 살리고 싶어서가 아닐 거야. 혹시나 멀쩡한 사람을 사형장에서 사라지게 한 이후에 무죄가 밝혀지면 어떡해. 그러나 박정희는 가짜 간첩을 7명이나 만들었지. 대법원 판결이 나자 단 12시간만에 사형당하고 말았어. 그분들은 말이야 결혼도 하고 아내도 있었고 아들딸이 있었어. 누가 더 잔인한 거지. 그 일에 진심으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면 누가 더 잔인한 거지. 남편 없이 40년을 울면서 살게 하였다면 누가 더 잔인한 거지.

    송명호로 살기의 어려움이 생겼다. 알량한 시 한 수 때문에, 민족 문학 작가회의 회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조선, 중앙, 동아에서 동네방네 떠들고 말았다. 이들은 우려 먹기 시작할 것이다. 흥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일거리가 생겼다. 자 내일부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