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일랜드의 시인이다. 그는 ‘재림(再臨)’이라는 시에서 세상의 종말을 이렇게 예언했다. “최고의 인물들은 신념을 잃어가고, 최악의 인간들은 광기로 가득하네.”

    박정희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세력’은 경제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다. 개발독재의 그늘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자본주의)에 기초한 박 대통령의 산업화가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수준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권력을 잡은 소위 ‘민주화 세력’은 박 대통령을 매도하고 그의 산업화를 폄훼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 좌파는 ‘진보’라는 단어를 선점하고 아울러 ‘언어 조작’의 마술로 일시적이나마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 바탕 위에서 그들은 산업화 세력과 많은 선량한 국민을 부패한 반(反)민주 수구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반(反)시장주의의 광기를 퍼뜨리고 있다.

    이에 대항해야 할 우파와 기업인들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채 집권 좌파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말세가 오려나.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예이츠의 불길한 예언이 떠오른다.

    왜 우파와 기업인들은 시장경제 수호에 소극적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제도로서의 ‘시장경제’가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이다. 공공재는 개인들의 ‘무임승차’ 인센티브 때문에 시장에서 생산이 안 되므로 정부가 이를 대신해 줘야 한다. 하지만 좌파 정부는 반대로 시장경제를 훼손하려 든다.

    둘째, 우리나라의 우파 지식인 전사들이 좌파에 비해 형편없는 열세에 있기 때문이다. 김진홍 목사는 오랜 세월 빈민촌 목회 활동을 하면서 우파로 거듭난 성직자다. 그는 좌파에는 수만 명의 훈련된 프로 전사가 있지만 우파에는 아마추어만 있는 것이 문제라고 개탄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그것은 좌파와 우파의 본질적 차이에 기인한다. 감성에 호소하는 좌파 사상은 ‘따뜻한 가슴’이 ‘냉철한 이성’을 누르는 젊은이들에겐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그렇다 보니 좌파 전사는 길거리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산업현장에서 쉽게 태어난다. 김 목사 역시 젊은 시절 1970년대의 참혹한 빈민의 삶을 보고 스스로 의식화되어 좌파가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김 목사는 오랜 세월 빈민과 함께 살면서 좌파적 분배로는 결코 빈곤을 해결할 수 없으며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만이 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듯 우파 지식인 전사가 탄생하려면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과 함께 오랜 경험이나 교육이 요구된다. 이 과정을 단축해 우파 지식인 전사를 양성하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좌파와는 달리 냉철한 이성을 갖춰야 하는 우파 지식인은 길거리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호 존 올린은 이런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는 미국의 좌파 시대였던 1960년대를 살면서 자유기업, 작은 정부, 선택의 자유와 같은 시장경제의 기본 이념이 훼손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 불행이 좌파 지식인의 득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항할 우파 지식인 전사 양성을 위해 사재(私財) 3억7000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미국은 시장경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1960년대의 미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좌파 질풍노도 시대에 있다. 국민 통합을 주도해야 할 대통령부터 ‘편 가르기’와 ‘양극화 장사’에 앞장서고 있으니 두말해 무엇 하랴. 이런 상황에서 올린처럼 우파 지식인 양성에 사재를 쾌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시장경제’라는 공공재의 무임승차 문제를 극복하고 한국의 올린이 될 것인가?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시장경제가 위태로워졌을 때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측이 나서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다. 누가 한국의 올린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광기 가득한 좌파’로부터 우리의 시장경제를 지켜 낸 영웅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