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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심지연 경남대 교수가 쓴 '유령당원과 당의장 선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비단 어느 한 정당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만, 최근 열린우리당에서 발생한 '당비대납'사건이나 '유령당원'문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자발적 의사에 따라 입당하고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들로 정당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의 정당처럼 야심가나 유력인사 주위에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식으로 정당이 제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열린우리당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는, 6개월 이상 당비를 낸 당원에게 공직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공천권을 주는 기간당원제가 애초 의도대로 순기능을 하기보다는 역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당 초기 이 제도가 당원의 열성적인 참여와 재정적인 기여를 유도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기간당원이 행사하는 공천권이 첫 번째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제도화됨으로써 이것이 당내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공직후보가 되려는 정치인은 가능한 한 많은 기간당원을 확보해야 했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각종 편법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비를 대신 내주며 입당하게 하거나, 본인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당원으로 가입시키거나, 그곳에 살지도 않는 사람을 당원 명부에 올리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간당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대중정당 모델을 전제로 한 기간당원제가 우리 현실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당원 등록과 정기적인 당비 납부를 근간으로 한 대중정당은 산업화시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창안한 것으로, 이념지향성이 매우 강하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평등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이라든지, 국가보안법.언론관계법.과거사규명법과 같은 4대 입법의 관철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촛불시위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과 달리 이념과잉은 일반국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두 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입증됐다. 이념지향적인 정당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유권자가 늘어나는 추세였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참패를 면치 못했던 것이고, 그 결과 당세가 정체 또는 위축된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경우 산업화와 후기산업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노동의 이익이 단일했던 산업화시대의 정당 모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노동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이념을 앞세워 민주노동당과 경쟁하며 노동자의 지지를 동원하는 데는 본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제를 그대로 두고 그들에게 배타적인 공천권을 행사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지지하는 모든 유권자에게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에 참가해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념지향의 폐쇄성과 실용지향의 개방성,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심각하게 따져 보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의장 선거에 출마한 9명의 후보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당이 어떠한 정당 모델에서 출발했는지, 이것이 현시대에 적합한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장밋빛 미래를 논하거나, 남의 당 걱정을 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유령당원'이 당의장을 선출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