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노 대통령의 4자 불패(不敗) 구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벽두 ‘유시민 카드’를 기습적으로 띄운 노림수는 무엇인가. 2007년 대선에 나설 보수·우익후보 진영의 ‘대분열’에 있다. 노 대통령이 반드시 ‘유시민 대통령 후보’를 결심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역술가의 예측이다. 당장 노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이 정동영·김근태를 토사구팽시키고 ‘유시민 대통령’을 모색하고 있다는 시중의 풍설,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유시민 대통령 구상론’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여론과 정치권에 받아들여지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보수·우익 대권 예비주자 누구도 자신의 야심을 결코 접지 않는다. “유시민이라면 내가 나가도 이길 수 있다”는 ‘안락한 계산법’에 빠져 너도 나도 출마 러시를 이루며 사분오열된다.

    대선에서 보수·우익후보가 난립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유시민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극단적인 ‘혐(嫌)유시민 정서’를 정치적 승부수의 도구로 재활용하는 노 대통령의 천재성, 그리고 대통령 탄핵을 사실상 교묘히 유도해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을 위해 건곤일척(乾坤一擲)했던 노 대통령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 또 다시 발휘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극약처방을 쓰는 것은 지금 민심대로라면 야당의 집권이 확실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작년 연말 내내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키더니 결국 기획해낸 것이 이런 회생의 카드였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유시민 대통령’ 가능성을 끝까지 유지하다가 결국 여권 후보로 유시민이 되든, 아니면 정동영이나 김근태가 된다해도 상관이 없다. 그때쯤이 되면 야권의 보수·우익후보는 국민 대부분이 땅을 치며 말려도 결국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치닫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 1 후보 대(對) 야다(野多) 후보’ 구조가 되면 현 정권의 정권재창출은 절로 굴러 들어온다. 여권은 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만들기 위해 다른 후보들을 주저앉히고 정동영만을 끝까지 가도록 했던 것처럼 지금도 ‘후보 단일화 공작’을 할 능력이 있다. 

    노 대통령은 대선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유시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고 있을지 모른다. 노사모는 노 대통령이 여의도 광장에 나가 “노사모는 영원하다”고 한마디만 외치면 신들린 듯 재결집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유시민은 2만명인지 3만명인지 알 수 없는 ‘유빠 기동타격대’를 거느리고 있다. 유시민은 노사모와 유빠 직할부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당대회를 극적인 대결로 뒤바꿔 놓을 수 있다. 유시민은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위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관으로서 당분간은 조신하게 처신하려 할 것이지만 때가 왔다 싶으면 그동안 반대세력의 울화통을 터뜨렸던 특유의 도발적 언사를 재현하며 기득권 세력을 몰아칠 것이다. 

    이런 비이성적 난리법석을 재미있어 하는 유권자가 늘어나면서 대선 판도가 뒤바뀐다. 이런 상황에 노 대통령이 올해 후반기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남북통일이 금방 닥쳐올듯이 분위기를 잡아나가고, 자신들이 말하는 그 이름도 거창한 ‘평화민주개혁세력’의 재집권 당위성을 홍보하면 먹혀들게 된다. 

    노 대통령의 유시민 카드는 역설적으로 보수·우익 후보진영에 ‘분열이냐 단합이냐’는 해답을 미리 던져 주었다. 고건이 어디로 합류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틀림없는 사실은 여론조사 1위가 대권 도전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회창 박근혜 이명박 정몽준과 또다른 보수·우익 야심가를 합쳐 이 가운데 적어도 2명만 나온다해도 여권에서 단일후보가 나와 ‘여1 대 야3’ 구조의 4자 대결이 된다면 결과는 여당후보가 ‘25%+α’만 득표해도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가 3김 야권을 분열시켜 어부지리를 얻은 1노3김 선거구도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노 대통령의 ‘4자 불패 구상’이라고 봐야 한다. 이럴 경우 ‘유시민 대통령’도 현실이 된다. 노 대통령은 이것도 무망해지면 올 하반기쯤 보수·우익의 집권을 바라지않는 세력을 총규합해 내각제 개헌으로 급선회할 것이다. 보수·우익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노 대통령의 정치인생을 건 도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