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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시론'란에 강형철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정보방송학)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MBC ‘PD수첩’팀과 황우석 교수측 간의 진실 공방은 결국 ‘취재 윤리 위반’으로 한 매듭을 짓는 듯하다. 필자는 언론 연구자로서 국익과 언론 보도의 건전한 관계를 공론화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전근대적인 취재 윤리의 문제로 끝을 맺게 돼 매우 아쉽다.
애초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 확보 과정이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제기한 ‘PD수첩’의 보도는 건강한 사회의 건강한 언론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 자체에 대한 반대도 많았지만, 필자는 국익에 관련된 사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보도함으로써 결국에는 국가의 체질을 강화시키는 선진 언론의 가능성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PD수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아줄기세포 진위 여부 검증에 나섰고, 결국에는 MBC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취재 윤리를 현저히 위반’하게 된 것이다.
진위 여부 문제 제기에 있어 ‘PD수첩’팀이 확보했다는 내부자 제보는 폭로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시작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사안의 보도를 위해서는 저널리즘 준칙상 이른바 ‘3각 취재의 원칙’에 따라 2개의 독립적 증거가 추가로 필요하다.
첫 번째 추가 증거를 위해 취재진은 연구팀에서 샘플을 가져다가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언론은 관찰자가 되어야 함에도 행위자가 되어 스스로가 언론 보도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과학 연구자들이 언론사에 샘플까지 ‘제출’해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PD수첩’이 그간 비판해 왔던 ‘언론 권력’의 모습이 아닌가?
미국 파견 연구원들에 대한 인터뷰는 두 번째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도의 진실성 위배와 억압적 인터뷰에 해당되는 일을 저질렀다. 방송 메커니즘을 잘 아는 제작진이 이를 잘 모르는 사람의 약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불공정성’을 지적받는다. 이렇게 수집된 증거들은 모두 보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만약 이러한 ‘오염된’ 증거들만이라면 MBC는 방송을 내보낼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은 이른바 ‘PD 저널리즘’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PD들이 만드는 보도 프로그램은 기자 조직이 놓치는 사안을 포착해 소개·폭로·고발한다는 장점이 있다. 기자들의 취재망은 주로 정부 부처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정보를 얻기 위한 접근이 지나치다 보면 취재원과 유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실제 한국의 ‘PD 저널리즘’은 기자들이 간과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이슈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사할린 동포의 삶’ ‘고엽제 피해자의 참상’ 등의 아이템은 단발성 보도에 집착하던 일반 뉴스 프로그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이번 ‘PD수첩’도 한국 언론 전반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아니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황우석 신드롬에 문제를 제기하려 한 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연구 윤리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시작한 ‘PD수첩’의 보도가 오히려 취재 윤리문제로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PD가 보도에 나선 순간 그는 기자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에게는 기자의 기본 소양인 공정성 및 취재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의 경험과 교육 기회가 요구된다.
상업적 오락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저널리즘의 위기’ 상황에서 비단 PD 저널리스트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자는 언론인의 윤리와 전문가 의식만이 언론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임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 민주화 이전에는 언론 현상에서 관건은 자유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책임의 문제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