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김창균칼럼'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활발한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방선거는 반년이나 남았는데 한나라당 의원 다섯 명이 “서울시장 내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여당 쪽에선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전·현직 각료들이 거명된다. 여론조사기관이 야당 자천(自薦) 후보 중 지지율 1·2위를 골라 여당 타천(他薦) 후보 중 랭킹 1위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양자 대결을 붙여 봤다. 두 대진표 모두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여당 20.7%, 한나라당 40.8%였다. 정당 간판만으로 선거를 치르면 게임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후보 간 대결로 가면 강 전 장관은 여당 지지율에 10%포인트를 보태고, 야당의 제일 경쟁력 있다는 후보들은 자기 당 지지율을 10%포인트 정도 까먹으면서 팽팽한 승부가 된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로 선거를 치르면 쉽게 이길 경기를 어렵게 치르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누구도 내놓고 말을 못한다. 한 당직자가 “밖에서 괜찮은 분을 모셔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가 이 말을 전해들은 주자로부터 “쓸데없는 소리 하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당 지도부도 다섯 명의 주자 전체와 원수가 될까봐 몸을 사린다.
결국 밖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교수는 “당내 의원들끼리 서울시장 하겠다고 싸우면서 무슨 인재 영입이냐. ‘밖에서 더 좋은 분을 찾아 보자’는 신사협정부터 맺으라”고 했다.한나라당 사람들은 “지방선거 전망이 너무 좋은 것이 탈”이라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 너도나도 “후보만 되면 당선인데 왜 바깥사람에게 양보하나, 내가 직접 하지”라며 나선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렇게 좋은 세월이 온 이유가 뭘까”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임기 중반 이후 선거는 원래 야당에 유리하다. 게다가 이번 여당이 워낙 죽을 쑤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이라는 큰 사업에 실패한 ‘덕분’에 지방선거라는 개평을 챙길 기회를 맞은 것이다. 두 번이나 사업이 망해 가세가 기울었으면 그 자손들은 한 푼이라도 집안 살림에 보탤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무너진 집안의 기둥뿌리, 대들보를 내다 팔아 내 배부터 채우겠다는 집안 꼴이다.
한나라당이 잘나가는 두 번째 이유는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강재섭 원내대표 등의 대선 주자들이 경합하며 흥행 효과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씨앗을 잘 뿌린 덕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한나라당이 내년 서울시장, 경기지사 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는 ‘2007년과 그 이후’ 당의 활로를 결정한다.
비슷한 경험을 했던 다른 정당의 사례도 참고해 볼 만하다.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회의는 수도권 전역에서 필승 구도였다. 당내에선 중진 두 명이 서울시장을 꿈꿨다. 한나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한 사람은 15%, 또 한 사람은 5% 정도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다. “고건이면 20% 이상 이긴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당시 핵심 관계자는 “90% 승산으로도 부족하다. 100% 이길 수 있는 카드를 골라야 한다. 서울시장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했었다.
서울시장은 그렇게 중요하다. 야당 의원들이 자기 정치 체급을 올릴 목적으로, 여당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을 발판 삼아 거저 차지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행정을 그런 식으로 맡길 수는 없다.
한나라당은 “우리가 누구를 후보로 내든 서울시민은 여당의 국정 실패를 심판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그걸 믿고 서울시장 자리를 이미 확보해 놓은 ‘쌈짓돈’ 취급한다면 서울시민은 그런 한나라당을 먼저 심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