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투기 위험 중심 '국내 인식' 여전히 잔존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이후 디지털자산법 수년째 유예美 은행권 스테이블코인·가상자산 사업 논의 확산국내 시장은 확대, 국회는 '허용·억제' 논쟁 반복
  • ▲ 비트코인. ⓒ뉴시스
    ▲ 비트코인. ⓒ뉴시스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한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 한마디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후 정부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이라기보다 투기·범죄 위험이 큰 영역으로 규정하며 규제 중심의 기조를 유지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장기간 고착되면서 산업의 제도화를 결정적으로 늦췄다는 점이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의 "어른들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는 발언처럼, 금융당국 수장들의 인식 역시 가상자산을 금융 시스템의 일부라기보다 관리·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데 머물렀다. 한국은행도 보고서에서 "지급수단 기능이 미흡하고 내재가치 평가가 어렵다"며 가상자산을 통화나 금융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더 큰 문제는 속도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과세 토론회에서도 과세 시점보다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기준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면 미국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며 시장은 제도권 안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은행권 역시 스테이블코인 활용과 디지털자산 기반 서비스 도입을 논의하며 금융 시스템 내부로 가상자산을 끌어들이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MiCA 체계를 통해 규제와 산업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고, 홍콩 역시 가상자산 허브 전략을 앞세워 제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한 차례 유예됐고,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수년째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국회는 반복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말 뒤에 머물지만, 시장은 이미 토큰증권(STO), 스테이블코인, 실물자산 토큰화(RWA)로 확대되고 있다.

    8년 전 "거래소 폐쇄"까지 거론되던 강경 기조에서 출발한 정책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결론은 방향의 부재가 아니라 유예와 논의의 순환이다. 산업은 이미 글로벌 속도로 재편되고 있지만, 국내 제도는 여전히 '허용과 억제' 사이를 맴돌며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회피할 수 없는 결단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