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트아웃 도입에 '묻지마 소송' 우려법적 안정성 흔드는 소급 적용 강행표적 입법 논란부터 ISDS 경고까지
  • ▲ 국회 법사위, 집단소송법 제정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 국회 법사위, 집단소송법 제정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법무부와 정치권이 집단소송제 전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 피해 구제 필요성이 부각되며 국회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 실시된 '노란봉투법'으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크게 제한된 상황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소송의 문을 여는 집단소송제까지 가세하며 재계는 전례 없는 사법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기존 증권 분야에 국한됐던 제도가 전 산업 분야로 확대될 경우 그 영향은 자본력과 법무 인력이 부족한 기업을 향할 전망이다. 재계가 일찍부터 "소송 대응력이 약한 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 ▲ 법원. ⓒ뉴데일리DB
    ▲ 법원. ⓒ뉴데일리DB
    ◆ 손배 청구 막히고 피소 위험 증가 … '공격권'만 극대화된 기업 환경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권은 미국식 집단소송제인 '옵트아웃(opt-out)' 방식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는 별도의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피해자 전체가 원고 집단에 포함되는 구조다. 피해자 구제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반면 기업 측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대규모 소송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이미 미국에선 집단소송이 변호사와 소송 펀드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재계 관계자는 "증권과 달리 피해 산정이 모호한 일반 제조물이나 서비스 분야까지 옵트아웃을 도입하면 '묻지마 소송'이 일상화될 것"이라며 "남소를 방지할 엄격한 요건이나 사전 심사 기능 없다면 기업 경영은 소송 대응에만 함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권 주도로 발의된 이번 법안은 지난해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정조준하고 있다. 특정 기업을 겨냥해 법 시행 이전의 사건까지 소급해 적용하겠다는 논의에 따라 헌법상 법적 안정성을 위반하는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외국계 투자자들이 '신뢰보호 원칙' 위반을 근거로 한미 FTA 상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나아가 대규모 ISDS 사태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는다. 소급 입법이 현실화될 경우 과거 사건까지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물론, 기업의 법적·재무적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행정처 역시 "소급 적용 시 이미 확정판결이 나온 경우에도 소송이 제기될 수 있어 분쟁이 심화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노란봉투법'의 시행으로 기업들의 사법적 '방어권'은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현재 산업 현장에서 기업은 노조의 불법 파업이나 쟁의 행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선제적으로 손해배상을 묻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집단소송제'는 기업 외부의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권을 쥐어주는 셈이다. 옵트아웃과 소급 적용이라는 독소조항까지 더해지면 기업은 손해배상 압박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한국상생제조연합회는 "제조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입법은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단 한 건의 분쟁만으로도 자금 운용이 흔들리고 거래 신뢰가 약화돼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 ▲ 국회 법사위, 집단소송법 제정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 국회 법사위, 집단소송법 제정 관련 공청회. ⓒ연합뉴스
    ◆ 남소 방지 빠진 집단소송제 논의 … "기업 생태계 위축 우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제가 피해자 권익 보호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키는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충분한 안전장치 없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소송이 권리 구제 수단을 넘어 '이익 추구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혁신을 주도해야 할 기업들이 단 한 건의 집단소송만으로도 투자 유치와 영업 활동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권용수 건국대 교수는 "중견·중소기업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도전하는 기업들은 위험이 훨씬 더 크다"면서 "집단소송제 소급 적용은 기업 이해관계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무분별한 남소로 인해 기업의 경영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소급 입법은 기업의 법적 리스크를 높여 기업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표적 입법' 논란을 낳고 있는 소급 적용이 법적 안정성을 흔들 것이란 비판도 거세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 소급 입법이 가능하다고 하는 논의도 있는데 그간 판례를 보면 조속하거나 새로운 요건 사실이 발생했어야 했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사법 체계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소송 비용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법적·재무적 불확실성 증가로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구조적 피해가 비교적 분명한 분야부터 우선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넓히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재계와 학계는 제도 도입을 논의하더라도 기업을 일방적으로 옥죄는 방향이 아니라 ▲엄격한 소송 허가 요건 ▲남소 억제를 위한 비용 부담 강화 ▲법원의 사전 심사 기능 확대 등 보완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