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영화 이어 2005년 뮤지컬 오리지널 연출로 참여한국 개막 맞아 첫 내한…7월 26일까지 용산구 블루스퀘어서 공연
  •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리지널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리지널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신시컴퍼니
    2000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한 편의 저예산 영화가 상영된 후 객석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중 오열하며 "이걸 뮤지컬로 만듭시다"라고 외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살아있는 전설' 엘튼 존이다. 영화가 끝날 때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와야 했던 존은 빌리 엘리어트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그 역시 어머니와 할머니의 헌신적인 지지와 희생을 통해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 입학하면서 삶이 뒤바뀌었던 것이다.

    엘튼 존의 후원에 힘입어 리 홀과 스티븐 달드리가 뮤지컬의 각본과 연출을 다시 한 번 맡고, 제작사 워킹 타이틀와 유니버설픽처스 스테이지 프로덕션이 가세하면서 뮤지컬의 꿈은 이뤄졌다. 엘튼 존의 직감으로 시작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20여 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 1200만 명을 홀린 메가 히트작이 됐다.

    뮤지컬은 2005년 런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에서 초연한 이듬해 올리비에상 작품상·안무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2008년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에선 토니상 작품상·남우주연상·연출상 등 10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에는 2010년 초연한 뒤 2017년·2021년을 거쳐 지난 12일 서울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에서 네 번째 시즌을 개막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디 아워스'·'더 리더'로 아카데미를 매료시키고, 넷플릭스 '더 크라운'으로 에미상을, 연극 '기묘한 이야기'로 토니상까지 거머쥔 거장 스티븐 달드리(65) 감독이 처음 서울을 찾았다. 지난 13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달드리는 전날 열린 개막 공연을 본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성인 빌리' 역의 임선우(가운데)와 빌리 역을 맡은 조윤우·김우진·김승주·박지후(임선우 제외 왼쪽부터).ⓒ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성인 빌리' 역의 임선우(가운데)와 빌리 역을 맡은 조윤우·김우진·김승주·박지후(임선우 제외 왼쪽부터).ⓒ신시컴퍼니
    "한국에 정말 오고 싶었는데 늘 다른 일정과 겹쳤다. 엘튼 존이 한국에서 공연이 올라가는 게 설레고 신난다고 했다. '빌리 엘리어트'를 몇 년만에 봤는데 배우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노래, 발레, 탭댄스 등 빌리를 비롯해 모든 배역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안무도 정교하게 소화했고, 배우들의 진정성이 돋보였다."

    달드리는 '빌리' 역을 맡은 김승주 군에 대해 "기적에 가까운 연기"라며 극찬했다. 이어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순수한 우아함'을 강조했다. "성장기의 아주 찰나에만 가능한, 변성기 전의 아이 같은 목소리와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파워풀한 춤의 대조가 짜릿함을 줬다"는 설명이다.

    영화가 빌리의 성장을 긴 호흡의 영상미로 담아냈다면, 뮤지컬은 무대라는 물리적 한계를 역으로 이용해 감정을 압축 폭발시킨다. 1막 엔딩 'Angry Dance(분노의 댄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을 가로막는 시위진압대의 방패와 벽에 온몸을 부딪치며 격렬한 탭댄스를 추는 빌리의 모습은 소년의 내면에 쌓인 좌절과 억압을 그 어떤 대사보다 명확하게 전달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삽입된 매튜 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 장면을 뮤지컬에서는 2막 초반 'Dream Ballet(드림 발레)' 시퀀스로 처리했다.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가 함께 춤을 추다 빌리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플라잉 기술은 관객으로 하여금 소년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하며 벅찬 감동을 안긴다.
  • ▲ 2010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1대 빌리'로 무대에 섰던 임선우.ⓒ신시컴퍼니
    ▲ 2010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1대 빌리'로 무대에 섰던 임선우.ⓒ신시컴퍼니
    달드리는 한국 초연 당시 소년 '빌리'였던 임선우가 성인 '빌리'로 돌아와 어린 빌리와 파드되(2인무)를 추는 장면을 백미로 꼽았다. "임선우가 등장하는 10분만으로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거다. 세계적인 수준의 발레리노로 성장한 그를 보며 우리 작품의 서사가 현실에서 이뤄졌다는 느낌에 가슴이 먹먹했고,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웠다."

    영화·뮤지컬은 1980년대 광부 대파업 시기 영국 북부 지방 탄광촌에 사는 11세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원작을 직접 감독했던 달드리였지만 "스토리텔링 면에서는 영화보다 뮤지컬이 더 성공적"이라는 자평이다. 영화가 빌리 개인의 성공에 집중했다면, 뮤지컬은 빌리를 둘러싼 '탄광촌 공동체'의 운명을 더 선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와 다르다. 빌리는 로열발레스쿨로 떠나지만, 남겨진 광부들은 다시 어두운 탄광으로 들어간다. 저는 그 장면을 마치 '무덤으로 들어가는 모습'처럼 연출하려 했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공동체에 대한 애도를 담고 싶었죠."

    달드리 감독은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 상황이 1980년대 영국의 탄광 폐쇄 시기와 닮아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 탄광업이 사라지며 자랑스럽던 공동체들이 소외된 지역으로 전락했듯, 지금 AI는 무서운 속도로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영화업계도 2년 안에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리지널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신시컴퍼니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리지널 연출가 스티븐 달드리.ⓒ신시컴퍼니
    그러면서 "하지만 공연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전율은 결코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 사람들이 전자기기 속에 고립될수록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욕구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고립된 시대를 사는 우리가 탄광촌이라는 옛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빌리'가 다시 무대에 서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달드리는 생애 처음 방문한 서울에 대해 "파리는 예쁘지만 지루할 때가 있는데, 서울은 밤 9시가 넘어도 에너지가 엄청나다"며 도시의 활력에 감탄했다. 현재 런던과 브로드웨이에서 흥행 중인 자신의 연극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도 꼭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관객들에게 당부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아이의 성공담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자, 서로가 서로를 돕는 공동체의 힘에 대한 이야기다. 빌리가 춤을 추며 자유를 느끼듯, 관객 여러분도 이 무대 위에서 소외된 이들이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7월 26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