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진출, 5월 8일~6월 6일 런던서 초연한국계 배우 나비 브라운, 샹코 차우드후리 무대디자이너 내한 인터뷰
  •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생존자 역할을 맡은 나비 브라운.ⓒ더웨이브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생존자 역할을 맡은 나비 브라운.ⓒ더웨이브
    좀비 아포칼립스(세계멸망)는 더 이상 낯선 장르가 아니다. 후지타 나오야는 2018년 출간된 그의 저서 '좀비 사회학'을 통해 좀비를 '현대 사회의 과잉된 타자성'이자 '무한 경쟁 속에서 주체를 상실한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서늘한 통찰을 무대 위 1인극으로 풀어낸 한국 뮤지컬 '더 라스트맨(The Last Man)'이 영국에 진출한다.

    '더 라스트맨'(김지식 극작·작사, 권승연 작곡)은 오는 5월 8일~6월 6일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에서 영국 초연된다. 이번 공연을 위해 현지에는 제작사 '더 라스트 맨 오프 웨스트엔드 리미티드'가 설립됐다. 한국의 제작사인 NEO(네오)와 김달중 연출이 직접 프로듀싱·연출로 나선다.

    작품은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B-103 방공호를 배경으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고립된 삶과 심리적 변화를 밀도 있게 담아낸다. 문밖을 가득 메운 좀비 떼가 '타인과의 단절'을 상징한다면, 방공호 안에서 마주하는 지독한 고독은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난민 상태를 거울처럼 비춘다.

    "MIT 건축학과에서 나온 반지하에 대한 논문도 읽어봤고, 영화 '기생충'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실제로 방문해 보니 크기가 더 작아서 굉장히 놀랐다. 폐쇄공포증, 반지하의 작은 창이 키워드로 와닿았다."(샹코 차우드후리) "맑은 날인데도 전등을 끄니 순식간에 방안이 어두워졌다. 여기서 혼자 지낸다고 생각하니 방 자체가 주는 압박감과 약간의 우울감을 느꼈다."(나비 브라운)

    영국 초연을 앞두고 샹코 차우드후리 무대 디자이너와 나비 브라운 배우가 지난 25일 서울 신림동의 한 반지하 방을 찾았다. 마지막 생존자의 고군분투를 다룬 뮤지컬 '더 라스트맨'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직접 'K-고독'의 현장을 답사한 것이다.
  •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은 샹코 차우드후리.ⓒ더웨이브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은 샹코 차우드후리.ⓒ더웨이브
    같은 날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브라운(22)은 "강력한 드라마를 갖고 있고, 다양한 감정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고립에서 오는 감정과 아픔을 전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인상 깊었다"며 전날 한국 공연을 관람한 소감을 말했다.

    차우드후리 디자이너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어 대본에서 읽은 감정이나 호흡을 기억하면서 관람했다"며 "한국 무대를 영국 버전으로 어떻게 변환시킬지에 초점을 뒀다. 런던에서는 프로시니엄이 아닌 돌출 무대(Thrust Stage·객석이 무대의 3면을 둘러싸는 형태)로 올린다. 신림동 반지하라는 특정 공간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잘 표현하는 게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브라운에게 더욱 각별하다. 현재 영국 예술학교 트리니티 라반에서 마지막 학년에 재학 중인 그녀는 한국계 영국인으로 이중 국적자다. 한국에서 5년간 거주하며 어머니의 정서를 배우고 자란 브라운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순간을 일찍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국에서 한국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고 영광이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반지하'라는 한국적 맥락이 영국의 관객들에게도 '보편적인 외로움'으로 치환돼 큰 울림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단순한 장르물을 넘어 작품의 주제가 '고독과 연결에 대한 갈망'이다. 배경은 한국이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도 통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보편성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관객의 정서에 맡게 대본 수정·해석 작업을 돕는 드라마투르그로는 지난해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은 제스로 컴튼이 참여했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컴튼은 국내에서 연극 '벙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 '프론티어 트릴로지'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생존자 역할을 맡은 나비 브라운.ⓒ더웨이브
    ▲ 뮤지컬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에서 생존자 역할을 맡은 나비 브라운.ⓒ더웨이브
    두 사람은 관전 포인트로 보이지 않는 공포가 주는 심리적 압박, 팬데믹을 겪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사회적 고립, 한국적 공간(반지하)이 주는 이색적인 미장센 등을 꼽았다. 브라운은 "좀비에 대한 작품이지만 실제로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차별점이다. 좀비보다는 사람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차우드후리 역시 "좀비 아포칼립스는 누구나 상상 가능하고, 많이 봐왔던 설정이기 때문에 극에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때로는 상상이 현실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곤 하는데, 공연은 블록버스터적인 접근 없이도 그런 순간을 전달하는 데 특화된 장르"라고 전했다.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의 더블 캐스팅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한 배역을 2~4명의 배우가 번갈아 수행하는 멀티 캐스팅이다. 반면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엔드는 전통적으로 한 명의 주연 배우가 모든 공연을 책임지는 원 캐스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영국 공연에는 오디션을 통해 브라운과 함께 남자 배우 렉스 리가 발탁됐다. 브라운은 "더블 캐스팅은 작품의 다양성을 더할 수 있고, 관객에게도 셀링 포인트로 작용될 수 있다. 배우마다 다른 해석을 보기 위해 다시 방문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리며 "혼자 100분 동안 공연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음악적으로 요구사항이 많은 어려운 작품이지만 배우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