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6일 NOL 씨어터 코엑스 우리은행홀에서 진행된 뮤지컬 '렘피카'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뉴시스
    ▲ 지난 26일 NOL 씨어터 코엑스 우리은행홀에서 진행된 뮤지컬 '렘피카' 하이라이트 장면 시연.ⓒ뉴시스
    '아르데코(장식미술)의 여왕'이라 불리며 20세기 초 유럽 미술계와 사교계를 풍미한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 신여성의 상징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고르스카. 폴란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타마라는 미남 변호사 타데우스 렘피키와 1916년 결혼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거주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남편이 볼세비키들에 의해 총살 위기에 처하자 관리들을 유혹해 남편을 탈출시키고, 우여곡절 끝에 파리로 망명한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에서의 삶은 비참했다. 인권 변호사였던 남편은 무능했고, 타마라는 가지고 있던 귀금속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으며, 딸 키제트가 태어났지만 부부 사이는 갈수록 나빠졌다. 어렸을 때부터 상류층의 화려한 삶에 익숙했던 그녀는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살려 성공하겠다고 결심한다. 모리스 드니와 앙드레 로테 밑에서 미술을 배웠고, 이름을 '타마라 드 렘피카'로 바꾼다.

    미술의 관습을 깨고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 누드를 과감하게 묘사한 화풍으로 이름을 알렸고, 기하학적인 직선과 번쩍이는 금속 광택의 장식적인 초상화를 그려내며 부와 명성을 얻었다. 빼어난 미모의 타마라는 양성애자로 자유로운 연애를 이어갔다. 보불뉴 숲에서 우연히 만난 성매매 여성 라파엘라에게 반해 그녀를 연인이자 뮤즈로 삼아 '아름다운 라파엘라' 등 다수의 누드화를 남겼다.

    1928년 타데우스와 이혼한 타마라는 1933년 헝가리의 귀족이자 자신의 후원자였던 라울 쿠프너 남작과 재혼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타마라의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은 팝가수 마돈나,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 등 유명 아티스트들을 사로잡으며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말년을 멕시코에서 보낸 렘피카의 유골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멕시코의 포포카테페틀 화산 분화구에 뿌려졌다.

    살아남기 위해 붓을 든 타마라의 삶을 그려낸 브로드웨이 뮤지컬 '렘피카'(작곡 매트 굴드, 작사 카슨 크라이저)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로 한국 초연을 올렸다. 2024년 4월 브로드웨이 롱가커 극장에서 정식 개막한 '렘피카'는 제77회 토니상에서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무대디자인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작품은 1975년 LA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노년의 타마라로부터 시작해 1916년 제정 러시아의 결혼식 날로 시간을 거스른다.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타마라가 러시아 혁명으로 투옥된 남편을 구하기 위해 끔찍한 거래를 하고 무너지는 모습부터 망명 이후 생계를 잇기 위해 시작한 그림이 독창적인 예술 세계로 확장되는 일련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다룬다.

    이번 초연은 뮤지컬 '하데스 타운', '그레이트 코멧'을 연출한 레이첼 채브킨이 맡았다. '더 뉴 우먼(The new woman)', 'Woman Is(우먼 이즈)', 'Don't Bet Your Heart(돈 뱃 유어 하트)', 'Perfection(퍼펙션)' 등 현대적인 팝과 록·R&B 요소가 결합된 음악은 격변의 시대 속 인물들이 갈망했던 욕망과 자유의 감정을 담아내며 렘피카의 주체적인 서사를 부각시킨다.

    매트 굴드 작곡가는 "렘피카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신선한 음악을 원했다. 재즈와 로맨틱한 넘버, 공학적이고 테크노 분위기가 풍기는 음악에 강철 같은 비트를 융합하려고 했다. 여러 시도 끝에 굉장히 새로운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이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에 대해 "재능있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의지에 매일 놀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능적인 1927년작 '아름다운 라파엘라', 몽환적인 눈빛과 붉은색 입술, 실크 스카프를 휘감은 채 부가티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타마라의 자화상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1929) 등 렘피카의 대표작을 무대 위에서 새롭게 재현한다. 파리 에펠탑을 연상시키는 거대 철제 구조물, 모던하고 심플한 무대는 작품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배우들의 원색 의상 등과 대비돼 시각적 몰입도를 높인다.

    자신의 욕망과 예술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낸 '타마라 드 렘피카' 역에 김선영·박혜나·정선아,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라파엘라' 역에는 차지연·린아·손승연이 캐스팅됐다. 렘피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역에 김호영·조형균, 렘피카의 조력자이자 남편인 '타데우스 렘피키' 역은 김우형·김민철이 분한다.

    김선영은 동성애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에 대해 "한 인간이 삶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투쟁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안에 아주 멋진 무대와 조명,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관객들은 단순히 낯설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났다는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나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붓으로 자신의 삶을 일궈냈지만 우리 모두 전쟁같은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나. 관객도 렘피카의 삶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실제 부부인 김선영·김우형은 '하데스타운'에 이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 김우형은 "같은 작품 출연 제안을 받으면 보통은 선택하지 않은 편이다. 이번에도 고민이 컸지만 연습과 공연을 거치며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에서 서로 작품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인데 쉴 틈 없이 소통하고, 집 근처에 별도의 연습실을 잡아 런스루까지 돌 정도로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선영은 "2막에서 현실 부부의 극렬한 싸움이 나오는데, 자칫 개인적인 감정이 무대에서 보여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결국 우리는 부부이기 이전에 개개인은 배우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얼마나 밀도 있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거고, 관객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드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뮤지컬 '렘피카'는 6월 21일까지 서울 NOL 씨어터 코엑스 우리은행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