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주도한 범청학련, 대법원 이적 단체 판단미군 철수·국보법 폐지·연방제 통일 등 주장"미국놈들을 몰아내자! 양키 없이 살 수 있다"朴 징역형 판결문에는 "北 동조 단체 활동"野 "北 김 씨 독재 주장 답습, 민주화 운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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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모습. ⓒ뉴시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과거 전과 이력이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의 전과 기록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강조하지만 박 후보자는 과거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며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펼치며 폭력을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야당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북한 김 씨 일가를 위한 종북 운동"이라며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18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실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1994년 5월 국가보안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총 5개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서울지법 북부지원은 1994년 5월 13일자 판결문에 "피고인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 집단의 활동에 동조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했다"고 명시했다.박 후보자는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과 의장 권한 대행을 역임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1992년 한 해 동안 각종 집회와 행사에서 반미·연방제 통일·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외부에 발신했다.주한미군 철수와 반미감정 자극, 연방제 통일 주장,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북한이 현재까지도 사용하는 대남전선통일전략이다. 실제 북한은 박 후보자가 시위를 주도한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이유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거부했다.1992년 1월 26일 전대협 임시 체제 출범식 '구국의 횃불 제5기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총련) 행사'에서는 북한과 결을 맞춘 주장이 난무했다.이들은 당시 기자회견문을 통해 "반미평화 군축 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이러한 투쟁을 미군 철수 투쟁으로 모아나갈 것"이라며 "연방제 통일 방안 합의 투쟁을 적극 전개할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반미에 기반하고 반미로 지향하는 투쟁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같은 해 4월에는 서총련 강령과 규약을 검토하고 사업계획을 논의하는 대회를 개최했다. 총노선에서는 "미제의 사회주의 와해 전략과 이북 고립화 책동에 맞서 이북은 주도적인 대응과 유연한 전략으로 적극적인 대외 통일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어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대중화시켜야 한다"면서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투쟁을 벌여야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 및 통일 인사 석방을 기필코 실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같은 해 전대협 총회를 개최해 강령을 마련하기도 했다. 강령에는 "친미 군사정권의 식민지 파쇼 통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자주적, 창조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완전한 사회민주화 실현"을 내걸었다. 아울러 "반미는 애국이다. 독재 지원 내정 간섭 미국놈들 몰아내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자료집을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배포도 했다.북한에서 보낸 '축전'이 발표되기도 했다. 북한은 축전을 통해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애국 투쟁에 새로운 승리를 이룩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면서 "앞으로도 피 끓는 남녘 학우들의 진군에 맞춰 발맞춰 나갈 것"이라고 호응했다. -
-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정상윤 기자
당시 법원은 박 후보자가 함께 한 전대협의 행위가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단집단에 동조할 목적이라고 봤다. 수차례 대학교를 돌며 수만 명이 모인 곳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를 발표하기도 했다.또 일간지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연방제 통일의 구호를 더 높여 95년 통일 조국으로 총 진군하자"면서 "사상과 제도보다 앞서는 것이 민족이요 핏줄이다. 통일의 시대 국가보안법은 필요 없다"는 내용의 전대협 산하 제3기 조국통일위원회 출범 선언문을 배포하기도 했다.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산하 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창설에 나서기도 했다. 대법원은 1993 범청학련을, 1997년에는 범민련을 북한 대남 적화통일 노선에 호응하는 '이적 단체'라고 판단했다.박 후보자는 1992년 범청학련 결성을 위한 남측준비위원회 개최에 참여했다. 범청학련 준비위는 "남과 북, 해외 동포 청년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한 역사적인 범청학련 결성식의 서울 개최를 성대하게 치러낼 것을 엄숙히 결의한다"고 했다.이어 "연방제의 기치 아래 조국 통일 이룩하자! 독재 지원 분단 원흉 미국놈들을 몰아내자! 양키 없이 살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하라! 남북 해외 동포 청년 학생들의 단결된 조국 통일 투쟁 만세"등의 내용을 담아 발족선언문을 발표했다. 1992년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 4일 동안 서울에서 개최하거나 불가능할 경우 판문점 개최를 계획했다.같은 해 8월 15일에는 판문점에서 범민련 북측 대표와 청년 학생 대표 등이 나와 범청학련 결성식을 개최했다. 발표된 범청학련 규약에는 중앙부터 지역 조직 구성까지 세세한 내용이 담겼으며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반대하고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재판부는 해당 발언들이 북한의 대남 선전 구호와 일치한다고 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박 후보자가 참여한 시위의 폭력 행사도 문제가 됐다. 법원은 박 후보자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에 해당하는 폭력 시위 가담 사실도 인정했다. 판결문 기록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1992년 5월, 대학생 100여 명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시위대는 회기파출소 앞에서 화염병 20여 개를 투척했고 경찰 표시등과 녹색 표시등도 부서졌다. 이후 경찰 기동대가 출동하자 화염병 80여 개와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이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경찰관이 나오기도 했다.재판부는 박 후보자에게 실형 전과가 없고 직접 폭력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다면서 정상참작해 형량을 감경했다.민주당은 이러한 과거 박 후보자의 이력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해 왔다. 민주당은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논평을 통해 박 후보자에 대해 "지난 군사 독재 정권 시절 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의장 대행을 역임하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롭고 공평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국민의힘에서는 이러한 이력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제6공화국 헌법이 제정돼 직선제가 시행됐던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을 가장한 '종북운동'일 뿐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박 후보자에 대한 판결문을 보니 여권에서 주장하는 민주화운동이 아닌 김 씨 독재 일당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종북운동'에 불과하다"며 "반미·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 통일 등 당시 북한 주장을 반복한 박 후보자 입장에 대해 지금도 생각이 같은지 인사청문회에서 엄정히 따져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