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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9월 한국에 진주한 미군이 전방 북위38도선상 도로에 숫자 표지를 하고있다. (장소미상)
★길을 떠나며
가거라, 38선!
--작사 이부풍 작곡 박시춘 가수 남인수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
납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38선을 탄(嘆)한다
이 노래는 1948년 봄무렵 인기가수 남인수(南仁樹, 1918~1962)가 불러 민족적 비극의 설움을 달래준 국민가요급 히트곡이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은 그 순간 삼천리 강토를 38선으로 잘라버린 ‘분단’이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남북이 가로막힌 원한 천리길’을 두고 끊어진 핏줄과 빼앗긴 재산, 잃어버린 고향산천의 참혹한 비극에 원한이 사무쳤던가. 소련군의 약탈과 핍박에 가족과 재산을 잃은 북한동포들이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 38선을 원망하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주린 배를 물로 채우며 새 삶을 개척해야 했던 동포들이 그 얼마였던가.
당시 공보처 자료에는 해방 후부터 1949년 8월까지 4년간 북한을 탈출한 난민이 약 350만명이란 추정치를 내놓고 있다. 다음해 일어난 6.25침략전쟁때 대거 탈북한 동포들까지 합쳐 ‘1천만 이산가족’이라 불러왔다. 해방직전 북한 인구가 약880만명(일본총독부 조사) 규모였음을 알게되면, 소련을 거부한 민족대이동에 세계가 놀란다.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
삼팔선 세글자를 누가 지어서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런가
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살팔선아, 가거라!
38선을 누가 지었느냐고? 미국이 짓고 소련이 동의했다. 두 강대국이 공범이다.
일본멸망의 기쁨도 잠시, 38선 분단을 알게된 이승만은 펄펄 뛴다. “38선 반대, 소련군 진주 반대”를 외치고 외쳤다. 일제가 망하면 즉시 독립하려 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자신이 미국 정부에 수없이 경고했던 말 “일본이 물러가면 소련이 내려온다”는 예상 그대로였다.
그보다 이승만을 경악시킨 것은 ‘얄타 밀약’의 현실화에 있었다. 해방 6개월전 얄타회담 막후에서 진행된 루즈벨트와 스탄린의 한반도 흥정이야기, 전향한 소련간첩 미언론인의 제보가 들어맞은 것, 이승만은 이 제보를 미언론과 정치 종교 각계에 폭로전을 펼친 바 있다.
“배신자!” 분통을 터트린 이승만의 지적대로, 당시 양대 강국이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 제멋대로 만든 전후 최악의 암덩어리, 약소국을 배반한 패권주의 만행이다.
자유여~~~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 (3절 후렴)
휴전직후 상경한 시골뜨기 필자가 고교시절을 보냈던 서울 거리는 온통 자유의 물결이었다.
정당 이름도 자유당, 영화도 ‘자유만세’요, 극장도 ‘자유극장’이다. 자유시장, 자유택시, 자유다방, 자유식당, 자유빵집...심지어 바람난 유부녀 이야기도 ‘자유부인’이란 신문소설로 대인기였다. 그뿐인가, ‘통일’ ‘태극’등이 기업이름, 상품, 학용품에 로고로 유행, 통일옥, 통일산업, 통일케익이 불티나고 태극 복덕방, 태극 부채, 태극 노트, 제과점 ‘태극당’이 성업이었다.
요컨대 공산당 침략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자부심, 자유정신, 국가의식이 그때처럼 국민정신으로 혼연일체가 되었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았다. 박정희의 ‘새마을정신’이 그것을 이어받았다고 할까. 전쟁을 겪어야만 비로소 국민통합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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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인천상륙작전 직후 10월1일 38선을 돌파한 국군 제1군단 김백일 군단장이 '38선은 없다'는 구호앞에서 기념 말뚝에 "아아, 감격의 38선 돌파'라고 쓰고 있다. 이승만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이 본국의 방침에 따라 38선 진격을 멈추고 있을때,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에게 "38선을 돌파하라' 명령했다.ⓒ조선DB
◆여기서 역사적 국민비극의 원점 38선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들을 보자.
1) 트루먼은 왜 막판에 가서야 한반도에 부랴부랴 38선을 그었는가.
2) 스탈린은 왜 미국의 38선 제안을 큰 이의 없이 받아들였는가.
3) 미국은 일본도 독일처럼 4개 연합국이 분할점령하려던 계획을 세우고서도 이를 포기하고, 일본 열도 대신에 한반도를 소련과 분단했는가.
4) 스탈린이 얄타에서 루즈벨트로부터 얻어낸 것이 한반도 전부인가, 반쪽인가.
5) 대일전 선전포고와 동시에 소련군이 한반도로 쇄도한 전광석화작전의 목표는?
6) 소련과 정반대로 미국은 왜 그토록 한국에 대한 관심도 확고한 정책도 없었는가.
7) 미국의 “한시적 군사분계선”에 동의한 스탈린이 왜 즉시 38선을 봉쇄하였나?
8) 이승만의 ‘정읍선언’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가.
9) 사실에 부합하는 ‘분단의 원흉’은 누구인가? 이승만? 스탈린? 트루먼? 또는 휴전협정을 강행한 아이젠하워?
10) 소련은 유엔의 남북한 총선 결의안을 즉각 반대하고, 유엔한국위원단의 입북도 막았다. 그 진정한 배경과 목적은 무엇인가?
11) 만약 소련이 유엔결의에 응해 남북한 총선이 실시되었다면, 결과는 공산통일? 자유통일?
12) 소련군정이 행한 북한선거는 공개 흑백투표인데 과연 자유-비밀 투표가 가능하였을까.
13) 전국2월폭동, 제주4.3폭동 외에 남한선거방해공작의 백미는 소련의 지령에 따른 남북 정치회의였다. 스탈린은 왜 김구를 이용만하고 버렸는가?
15) 대한민국 건국후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한을 끈질기게 공격한 것은 소련의 ‘북침’ 조작 전술인데, 왜 이승만정부도 미국정부도 대책이 없었는가, 있었는가.
이와같이 38선에 관련된 의문들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미줄처럼 흘러나온다. 이밖에도 많은 질문이 만들어지는데 우선 이 연재기획은 주요 질문들에 대한 ‘정답’부터 알아보려 한다. 이를 알게 되면 다른 질문들, 즉 ‘분단 고착화’의 진상이나 김구세력의 ‘김일성 연대 통일노력’에 대한 궁금증같은 것도 동시에 풀리리라 믿는다. 이승만의 신념이 부른 역기능도 보자.
◆새 연재의 주제 ‘이승만 독트린(Doctrine)’
한마디로 38선으로 분단된 조국을 ‘통일독립’시키기 위해 제시한 ‘건국 원칙’을 말한다.
미국의 방해로 해방 두달 지나서야 귀국한 이승만 박사는 몰려드는 인사들에게 “조국 강토환원의 장애는 제거되어야 한다‘며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을 몰아내자는 주장을 계속하였다. 귀국 나흘만인 10월20일 연합군 환영대회에 나선 첫 공개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국은 남북통일 독립이어야 하고 38선을 없애기 위해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리고 사흘만에 출범한 ‘독립촉성회’(獨立促成會=독립을 속히 이루는 모임)이 그 ‘통일독립’의 추진체였다.
이 ‘소련 추방-자주통일’이란 ‘이승만 독트린‘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유명한 ’정읍성언‘이다.
이승만의 자주통일론은 정읍에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워싱턴에서 38선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귀국후 독립촉성회와 돈암장(敦岩莊)에서 행한 연설, 그리고 남선순행(南鮮巡行) 길 곳곳에서 같은 주장을 했지만, 당시 언론이 정읍연설만 보도하였고, 이에 공산진영이 ’분단의 원흉‘운운 악선전을 벌였기 때문에 ’정읍‘만 부각된 것이다. 과연 ’분단의 원흉‘은 누구던가?
이승만은 이 굳건한 원칙 위에서 국제공론=유엔에 호소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전쟁에선 단독 북진통일을 외치며 ‘한미동맹’을 체결하였고, 통치기간 내내 스탈린이 만들어놓은 분단체제 타파를 위해 ‘스탈린주의와의 전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읍선언‘=’이승만 독트린‘
필자는 그동안 ‘정읍발언’이라 폄하된 호칭을 ‘정읍선언’이라 격상시키고, 그 역사적 역할과 의미에 어울리는 ‘이승만 건국 독트린’, 줄여서 ’이승만 독트린‘으로 규정해야 올바른 평가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에 세계를 움직인 몬로독트린, 트루먼독트린, 닉슨독트린이 있다면 한국엔 이승만독트린이 있다. 아니 당시 국내외적으로 ’정읍선언‘의 세계사적 의미는 보다 더 크다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조차 몰랐던 ’냉전시대‘의 도래를 알려주고, 소련에 붙잡힌 미국조차 구출해주면서 ’냉전질서의 교통정리’까지 감당했던 이정표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15년전 필자가 시작한 ’이승만 포럼‘에서 발표하였고, ’뉴데일리‘ 등에 쓴 칼럼들, 그리고 지난 해 10월 내놓은 3부작 [이승만 건국여행 100장면]에서 보다 구체화하려 시도하였다. 이 ’건국여행 100장면‘은 분량이 방대하여 출판을 미루고, 전자책으로 제작하여 교보문고 홈피에 올려놓았으며, 소책자 샘플북(sample book)을 만들어 소개한 바도 있다.◆’Donroe주의‘ 시대 우리의 생명은?
지난 80년간이나 정읍선언에 씌워졌던 누명 ’분단의 원흉‘이란 껍질을 벗겨내고 그 ’이승만 독트린‘이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의 결정적 기축이념으로써 정립되는 계기가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지금도 스탈린의 생산물 분단체제에 살고 있으며, 그 분단체제의 결과물 북한 핵에 대한 방어를 미국이 대책도 없이 한국 혼자 도맡으라는 상황에 이르렀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돈노주의‘(Donald+Monroe=Donroe Doctrine)가 뭔가에 화가 나서 ”한국, 네멋대로 해보라’는 듯, 한미동맹도 잊은 채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까지 통째로 떠넘길 모양이다.
어찌할 것인가, 모두가 자업자득 아닌가. 분명한 것은 ‘이승만 독트린‘의 자주통일정신이 어느때보다 긴급필수과목이 돼야 한다는 냉엄한 글로벌 현실인식이다.
이제부터 애끓는 정읍사(井邑詞)로 자괴(自傀)의 울분을 달래며 ’이승만 독트린‘의 달 밝은 여행 길을 다 같이 떠나보자.
달아, 높이 곰 돋아샤
어긔야 멀리 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