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 제재 이후 6년…트럼프 방향 전환 신호탄무기화된 원유 공급망, 실리 전략으로 뚫을까
  • ▲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의 정유 시설. 출처=로이터ⓒ연합뉴스
    ▲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의 정유 시설. 출처=로이터ⓒ연합뉴스
    베네수엘라가 간접 소유한 미국 정유사 시트고(Citgo Petroleum)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구매한 사실이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됐다. 이는 사실상 단절됐던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의 에너지 라인이 6년 만에 다시 이어진 중대한 변곡점으로 평가된다.

    29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시트고는 최근 트레이딩 기업 트라피구라(Trafigura)로부터 약 50만 배럴 규모의 중질유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거래는 단순히 기업간 수급 계약을 넘어 미국의 대(對)베네수엘라 에너지 정책과 국제 에너지 지정학의 새로운 국면을 반영하는 신호로 읽힌다.

    미국은 2019년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하면서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와의 관계가 끊겼고, 오랜 기간 이 지역 원유에 접근하지 못했다.

    시트고는 원래 이 PDVSA의 미국 자회사로 한때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최대 수입처 역할을 했던 핵심 자산이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와 함께 시트고 역시 임시 관리 체제로 전환돼 원유 구매가 중단됐다.

    현재 시트고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채무 불이행과 자산 몰수로 피해를 입은 채권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법원 명령으로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회사의 인수권은 최근 헤지펀드 엘리엇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계열사 앰버 에너지가 확보했다.

    앞서 앰버 에너지 측은 베네수엘라와의 관계 정상화 시 시트고를 통해 베네수엘라 원유 재구매에 나서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관계자를 통해 밝혔다. 캐나다산 원유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면 고려해볼 만 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변화가 맞물려 이번 구매가 성사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제재 일변도의 에너지 정책 기조에서 실리적인 방향의 전환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 현지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베네수엘라산 원유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트라피구라와 같은 글로벌 트레이딩 하우스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이들 트레이딩 하우스는 마케팅과 실수요 정유사와의 연결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직접 제재 방식과 달리 '포스트 제재' 시대의 에너지 외교를 의미할 수 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한편, 미국의 제재 기간 동안 자체적으로 미국산 원유 등으로 생산 공정을 채워왔던 시트고로서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거래의 물꼬가 다시 트였다는 점이 호재라는 평가다. 시트고가 베네수엘라산 중질유에 최적화된 정유 설비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미국 측은 이처럼 중질유 처리 능력이 우수한 시트고를 포함한 일부 정유사들에 베네수엘라산 원유 확보 루트를 다시 열어주면서, 외부 공급선 다변화와 자국 정유 산업의 비용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에너지 시장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미국 정부의 정책 전환이 실제 수급 계약으로 현실화한 이번 사안은 에너지 지정학의 재편을 예고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