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범위 확대…법보다 먼저 움직이는 기업들전 노동부 장관 영입해 '노동 TF' 꾸리는 로펌들"파업의 '합법' 기준, 더 모호해질 수 있다" 우려
  • ▲ 이재명 대통령. ⓒ뉴데일리DB
    ▲ 이재명 대통령. ⓒ뉴데일리DB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노란봉투법은 아직 '미개봉' 상태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사회적 파장은 이미 산업 현장을 흔들고 있다. 기업은 노동팀을 꾸리고 노동자는 다시 들썩인다.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 법을 둘러싼 권리와 책임의 경계를 추적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불법 파업은 면책되고 기업은 입을 다물게 돼요."

    지난 5월, 수도권에 본사를 둔 한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최근 로펌 자문을 받아 '노란봉투법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업체 소속 노조가 원청 기업과도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불법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수차례 거부권이 행사되며 좌절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이를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늘 강조해 왔다.
  • ▲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 및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제정을 위한 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30. ⓒ이종현 기자
    ▲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 및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제정을 위한 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30. ⓒ이종현 기자
    ◆ 李 "노란봉투법 연내 통과"에 … '노동 TF' 꾸리는 로펌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주요 로펌들은 노동 분야 전관(前官)을 영입하며 노란봉투법 전담 TF 신설에 나섰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하청업체 근로자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와만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원청 기업까지 교섭 대상으로 포함돼 사용자 개념이 대폭 확장된다.

    교섭 창구가 급증하면서 분쟁 발생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1차 협력사만 700곳이 넘고, 현대차도 약 350개에 달하는 1차 협력사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노무 리스크 관리와 법률 자문 수요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법무법인 광장과 태평양은 지난 9일 각각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을 주제로 한 온라인 세미나를 열고, 노동정책의 기조가 사용자 중심에서 노동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태평양은 박화진 전 고용노동부 차관을, 광장은 안경덕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각각 영입하며 노동 대응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적300인 중 재석 179인, 찬성 177인, 반대 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2024.08.05. ⓒ이종현 기자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적300인 중 재석 179인, 찬성 177인, 반대 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2024.08.05. ⓒ이종현 기자
    ◆ '불법'과 '합법' 사이 … 파업의 법적 경계 흐려진다

    법조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불법과 합법 파업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손해배상 소송이 불법 파업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역할해 왔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같은 견제 장치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가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데 개정안 시행 시 사실상 통제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대응에 자원이 집중되면, 생산성 향상이나 인력 투자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 공인노무사는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라, 정당한 파업과 명백한 불법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입법보다 사회적 대화 복원에 방점을 둘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만큼, 노사 갈등이 과거처럼 격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경사노위가 중단된 상황이지만, 향후 노동부 인선을 거치며 노사 간 입장을 조율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