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입문 19년 만에 '최고 권력' 대통령 당선모든 직책 두루 거치며 다양한 경험은 강점비상계엄으로 기회 잡았으나 당선에도 사법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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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된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를 떠나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정치에 정식 입문한 지 19년 만에 대한민국을 이끌 선장이 된 것이다.이 당선인은 그의 회고록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내 인생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며 비주류 정치인의 길의 고됨을 호소해왔다. 그는 또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 기본사회 30년을 준비할 때"라며 "이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회복과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이 당선인은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12세에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아 인권변호사로 나서기로 했다고 밝혀왔다.1989년 경기도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이 당선인은 1994년 성남시민모임(성남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시민운동가로서 그의 최대 업적으로 성남의 개발 비리를 캐내는 것이었다.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를 주도했다. 파크뷰 의혹 제기는 그에게 전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검사를 사칭해 김병량 전 성남시장을 취재하는 데 도움을 준 혐의로 2003년 7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시민사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5월 제4회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성남시장 후보로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2008년 4월에는 제18대 총선 경기 성남 분당갑 후보로 나섰지만 떨어졌다.두 번의 낙선을 겪은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4년 만에 3번째 선거에 도전한 그는 결국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처음으로 실권을 쥔 제도권 정치인이 됐다.그는 첫 당선 직후부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성남시에 모라토리움(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전국 지자체 최초였다. 하지만 이런 선언은 공방을 일으켰다. 이 당선인은 자신이 모라토리움을 선언해 빚을 청산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국토교통부의 정상 요구가 없었다고 반발한다.여러 화제를 일으키면서 이 당선인은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청년 배당과 중학생 무상교복 등의 파격적인 정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청년 배당은 현재 이 후보의 간판 정책인 기본소득의 모태라고 불린다.그의 SNS 사랑도 이때 시작됐다. 트위터를 통해 직설적인 발언을 하며 온라인에서 팬층을 키웠다. 손가락 혁명군으로 불리는 그의 팬클럽은 현재 이 후보의 핵심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원조로 평가받는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은 이 후보를 전국구 스타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성남시장 신분으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대권 도전에 나섰다. 당의 비주류로 대통령에 도전해 당시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순간은 그에게 높은 인지도를 줬지만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계와 갈등의 시발점으로 꼽힌다.대통령 후보 경선을 문 전 대통령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3위(21.2%)로 마친 그는 2018년 경기도지사에 도전한다. 성남시라는 지자체의 장에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체급을 올린 것이다.도전은 험난했다. 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친문 핵심인 전해철 전 의원과 부딪쳤다. 여배우 스캔들, 혜경궁 김 씨 논란, 형수 욕설 논란이 모두 이 과정에서 나왔다.전 전 의원을 꺾고 본선에 올랐지만 이 당선인을 향한 공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형 정신병원 입원 의혹 등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경기도지사 당선 후에도 줄곧 재판에 신경 써야 했다.경기도지사 재임 당시에도 코로나 정국을 이용해 전국민기본소득을 밀어붙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선별 지급을 진행하자 이 당선인은 결을 달리하며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그의 기본소득 정책이 확실하게 유권자들에 각인되는 순간으로 평가받는다.2020년 그를 괴롭혔던 공직선거법 재판도 무죄 취지로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되며 날개를 달았다. 같은 시기 문 전 대통령 이후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스캔들'에 휘말리며 정계를 떠났다.이 당선인은 경기도지사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재수에 나섰다. 국회에 우군이 많지 않았던 이 당선인은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민주당 당대표를 역임한 이낙연 전 대표와 맞붙었다.경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대장동 사건으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법리스크'의 신호탄이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이 당선인은 이낙연 전 대표를 누르고 당 대통령 후보에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본선은 만만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들며 '공정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그를 향한 각종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당 경선부터 시작된 대장동 의혹과 백현동 개발 의혹, 살인자 조카 변호 이력 논란, 장남 불법 도박 논란, 불법 대북송금 의혹, 법인카드 사용 논란 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1월 23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4차 국민행동의 날'집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이종현 기자
이런 상황에서 이 당선인은 0.73% 득표율 차로 패배의 쓴맛을 봤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그는 3개월 만에 정치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로 정치 복귀 신호탄을 쏜 것이다. 민주당의 텃밭으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선을 한 지역에서 그의 도전은 방탄 출마라는 비판을 받았다.같은 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출마해 당선됐다. 경쟁자가 없었다. 집권당 대선 후보에서 제1야당 당대표로 화려하게 중앙정치 무대에 올라섰다.당대표로 그는 민주당을 장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당원주권시대를 표방한 이 후보는 자신의 강력한 '팬덤'을 당원으로 끌어들였다. 당헌·당규도 당원들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했다.제22대 총선 민주당 공천 과정은 '비명횡사'로 요약된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 과정에서 탈락하면서다. 당원들의 표 비중을 높이면서 친명(친이재명)계가 대거 공천을 받았다. 이재명 당선인과 비명계의 갈등 국면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당을 탈당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170석을 얻고, 범야권이 190석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2024년 당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득표율은 85.4%였다.'이재명 체제'가 완성된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파상공세에 나섰다. 입법권을 장악한 민주당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응수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도돌이표 정국이 계속됐다.민주당은 탄핵과 특검 등 자신들이 가진 권한을 최대치로 활용했다. 국무위원들과 이 당선인을 수사했던 검사들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줄줄이 통과됐다. 특히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세 수위는 윤 전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됐다. 결국 김건희특검법을 두고 불거진 당정 갈등은 비상계엄 사태의 최대 원인으로 꼽힌다.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 당선인에게는 천운으로 꼽힌다. 반복되는 거부권과 탄핵 등으로 이 당선인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커지던 찰나였다. 피로감이 커지는 정국에서 비상계엄은 모든 판을 뒤집는 계기가 됐다.이 당선인은 국회에 소속 의원들을 불러모아 2시간 만에 계엄을 해제했다. 탄핵 명분을 찾던 민주당은 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탄핵의 당위성을 확보하며 행동에 나섰다.2024년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 당선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기류가 확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길어지며 여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헌재가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이 당선인은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 위치를 굳혔다.지난 4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 당선인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도 여유롭게 승리했다. 득표율은 89.77%.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경선에 나섰지만 그를 위협하지는 못했다.대선에 나선 그는 과거에 발현됐던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가렸다. 내란 종식과 민생 회복을 주장하며 성장에 방점을 뒀다. 20대 대선에서 추진했던 기본사회 시리즈는 공약화되지 않았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며 '우클릭'에 공을 들였다.21대 대선에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며 결국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5개 재판을 받고 있다.공직선거법 재판 파기환송심 첫 재판은 오는 18일 열린다. 이 재판에서 이 당선인이 벌금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무효형으로 직을 잃는다. 피선거권도 박탈된다.민주당은 조만간 임시국회를 열어 '대통령 재임 시 재판을 중지하는 개정안' 등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재명 수호'가 이재명 정부의 첫 단추를 끼우는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