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창사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1조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고환율과 원자재값 상승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영업손실이 대거 반영된 결과다.
일각에선 올해 공식취임한 이한우 대표이사가 대규모 손실을 전임 최고경영자에게 떠넘기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건설은 2024년 연결기준 잠정매출액 32조6944억원, 영업손실 1조220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적자 전환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2020년 인도네시아에서 연이어 수주한 발릭파판 정유공장 프로젝트와 2021년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자푸라 가스플랜트 사업에서 1조원대의 손실이 발생해서다.
원가율 방어에 성공하지 못한 것도 빅배스에 영향을 줬다. 현대건설은 매출액 증가에도 원가율이 95%대에서 100.6%로 증가하면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업계에선 주요 건설사들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손실을 지난해 4분기에 앞당겨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당장은 잠재적 손실반영으로 어닝쇼크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짙어질 수 있겠지만 선제적 위험관리라는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요건설사들이 잠재적 부실로 지목되는 미청구공사액을 손익에 반영하기 위해 빅배스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실제로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대건설사 작년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미청구공사액은 19조5933억원으로 2023년말보다 11.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청구공사액은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 기존회계에 이익으로 기록됐던 금액이 손실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하는 빅배스가 발생하게 된다.
또 건설사들이 대대적으로 수장을 교체하면서 상반기 빅배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각각 이한우 부사장, 주우정 사장을 대표이사에 앉혔고 대우건설도 같은달 김보현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취임 10개월도 채우지 못한 전중선 대표이사를 지난해말 정희민 대표로 교체했다.
수장교체를 앞두거나 실적부진을 선반영하기 위해 빅배스를 진행한 사례는 종종 있다. 대우건설 경우 2017년 모로코 발전소사업과 관련 3000억원가량 손실을 회계에 반영했고 금호건설은 지난해 3분기 회사가 보유한 부실을 수면화하면서 영업손실 1574억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빅배스를 통해 회계상 부실요인을 한꺼번에 털어내 실적반등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사업체질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다. 특히 건설사 PF 우발채무 부담이 여전히 높은 상황으로 추가손실 반영 우려도 남아있다.
결국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빅배스 효과를 보기 위해선 해외수주가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건설업계가 단순도급뿐 아니라 해외에서 플랜트시장에 진출하는 등 다변화에 한 발 내딛은 만큼 올해는 중동지역 중심 수주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다.